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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CT DREAM TOUR 'THE DREAM SHOW2 : In A DREAM' ] 엔돌핀, 도파민, 아드레날린 뭐 그런거 다 아낌없이 Dream
글쓴이는 지금 온갖 행복 호르몬들로 가득 차 있다. 2022년 9월 8일과 9일 양일간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NCT DREAM TOUR 'THE DREAM SHOW2 : In A DREAM'을 이틀 모두 관람하고 그 후기를 작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니뭐니 해도 덕질의 최고봉은 콘서트 관람이라고 생각하는 글쓴이는 이 꿈같은 기회를 쟁취하고 한껏 의기양양해져있다.
지난 7월 고척 스카이돔에서 예정되어 있었던 콘서트는 멤버 두 명의 코로나 감염으로 인하여 전면 취소되었다. 멤버들에게도, 3년이라는 오랜시간 콘서트를 기다려온 팬들에게도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처음 한 명이 감염되었을 때 그 멤버만 제외하고 콘서트를 진행한다는 공지를 발표하였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그 때 6명의 멤버로 콘서트를 진행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반 후 무려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콘서트를 개최한다는 공지를 맞이하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눈물이 핑 돈 것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2만석이 넘는 좌석이라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고 해도 조금이라도 앞자리에서 공연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 똑같으니 티켓팅도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그라운드 좌석은 엄두도 낼 수 없었고 운좋게 양일 모두 2층 중앙 구역의 자리를 예매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8일 오후 6시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의 2층 좌석에 착석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하늘은 맑고 높았으며 햇볕은 따뜻했다. 해가 넘어가면서 그림자는 길어졌고 조금씩 바람이 불었다. 장내에는 엔시티 드림의 노래가 계속해서 흘러 나왔다. 이제 곧 콘서트가 시작되고 멤버들이 나타나고 엄청난 무대들이 시작되겠지.
[총평 : 왜요? 제가 평생 엔시티 드림 좋아할 사람처럼 보이시나요?]
시작 전 마지막 노래는 잘 자 (Teddy bear) 였다. 엔시티 드림을 보기 위해 모인 팬들을 드림의 꿈 속으로 초대하는 노래였다. 메인 무대위에 7개의 스크린에서는 각 멤버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멤버들의 목소리에 맞추어 팬들은 모두함께 10부터 거꾸로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1을 외치는 순간 우리는 모두 꿈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호버보드, 농구공, 깃발, 호랑이. 엔시티 드림의 지난 앨범들을 의미하는 상징물들이 등장하는 오프닝 영상으로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커뮤니티에서는 심심치 않게 오프닝 곡에 대한 궁금증과 추측글, 어떤 곡으로 오프닝을 했으면 좋겠는지 선호글이 올라왔다. 웅장한 음악과 빠르게 지나가는 이미지의 끝에 맞이한 오프닝 곡은 정규 2집의 타이틀 곡인 버퍼링 이었다.
팬들은 자동으로 믐뭔봄(엔시티 드림의 응원봉은 특이한 네모형태로 되어있어 응원봉의 모든 자음을 미음 형태로 바꾸어 믐뭔봄이라 부른다) 을 흔들며 응원을 시작했다. 팬들의 작은 움직임이 모여 거대한 초록빛 파도를 만들어 냈고 응원소리는 경기장을 가득채웠다. 바로 연속하여 보여준 Countdown 과 Stronger 는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멤버들은 무대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파워풀한 모습으로 연속 세 곡을 이어나갔다. 보통 오프닝 세션은 그 콘서트의 분위기를 결정하고 멤버들의 첫 마음을 표출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엔시티드림은 그야말로 오프닝부터 휘몰아치는 무대로 팬들의 정신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고, 이렇게 넓은 경기장과의 힘겨루기에서도 지지않을 것처럼 확신을 보여줬다.
팀명에서도 콘서트 명에서도 알 수 있듯 이번 콘서트는 엔시티 드림의 꿈 속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바로 이어지는 노래의 제목은 Dreaming 이었다. '꿈 속의 꿈을 건너 우린 이어져' 라는 가사와 몽환적인 멜로디가 점점 꿈으로 인도하는 엔시티 드림에게 몰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개인적으로 엔시티 드림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무대로가 이어졌다. 꿈 속에서 꿈을 통해 서로가 연결되고 그 연결된 꿈을 무대로 삼아 마음껏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엔시티 드림의 모습. 그야말로 꿈슈탈트의 세계로 빠져들어가는 듯 했다.
분위기는 금세 또 반전되어 엔시티 드림의 대표적 레퍼토리인 첫사랑 4부작이 뮤지컬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마지막 첫사랑을 외치던 꼬맹이들은 '사랑이 좀 어려워', '사랑은 또 다시'를 부르며 사랑의 어려움과 행복함을 모두 겪으며 성인이 되었고 결국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밖에 없게 된다. 아주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지막 첫사랑의 연출 방식이었다. 실제로 이 노래를 부를 때 엔시티 드림은 16-19세의 중고등학생 친구들이었는데 6년이 지난 지금 과거 자신의 모습으로 분장한 댄서를 만나 과거를 마주하는 구도로 무대를 꾸며나갔다. 항상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해찬은 그 때의 자신의 자리에 현재의 자신이 들어가 대신 노래했고, 제노는 여러가지 부담감으로 항상 올바른 모습만을 보여줬던 6년전의 자신에게 메달을 걸어주며 응원을 보냈다. 과거가 슬픔이든 기쁨이든 지금 다시 마주하여 대화하고 응원해주는 모습을 보는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다음은 보컬 유닛무대였다. sorry heart를 열창하는 런쥔, 천러, 해찬의 보컬은 셋이서도 넓은 주경기장을 꽉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른 멤버들이 등장하여 부른 어쿠스틱 구간은 그야말로 편곡의 승리라 할 수 있겠다. 엔시티 드림의 어쿠스틱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너의 자리에 이어 데뷔곡인 Chewing Gum의 어쿠스틱 버전을 연결시킨 것은 누구도 상상못한 이어짐이었다. 데뷔곡의 향수와 리듬감을 그대로 살려 Chewing Gum 무대를 기다리던 팬들에게도 전혀 아쉽지 않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ANL(All Night Long), 고래, 주인공 등 엔시티 드림의 또 다른 레퍼토리인 미디엄 템포곡들이 등장하는 순간 구름에 가려져 있던 추석의 달이 환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동시에 가을 밤의 열기를 달래주는 바람이 살랑 불어왔다. 야외 콘서트의 묘미가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공연은 점점 무르익어 랩 유닛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Saturday Drip 은 마크, 제노, 재민, 지성 각각의 특징이 살아있는 목소리와 랩스타일이 혼합된 데다가 편곡으로 더욱 풍성한 사운드가 더해졌고, 폭죽과 조명효과까지 더해져 분위기를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어 새롭게 편곡된 Quiet Down 은 그 동안 멤버들이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관능적인 안무를 시도한 무대였다. 투명한 상자 안과 밖으로 나누어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가사에 맞춰 엄청난 페어안무를 보여줬다.
넓은 공연공간에 맞춰 뒤쪽의 좌석 앞에 별도의 무대를 구성하여 꾸민 점도 인상적이었다. 전체 중 단 두 곡 Diggity와 Fire Alarm 뿐이었지만 그 무대에서 멤버들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어느 무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이동식 무대위에서 타이틀곡 메들리를 보여준 것은 아주 신선한 구성이었다. 보통 콘서트에서는 이동식 무대를 이용할 때 타이틀 곡이 아닌 수록곡 중 신나고 즐거운 분위기의 곡을 구성한다. 팬들과 눈을 마주치며 교감하고, 사인볼 등을 던지는 이벤트에 어울리는 곡을 선곡하는데 Ridin', Go, Boom 과 같이 타이틀 곡 중에서도 굉장히 몰아치고 파워넘치는 곡을 EDM편곡으로 구성하여 팬들을 집중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느껴졌다.
공연은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다. 아직 나오지 않은 노래들이 분명히 나올 때가 됐는데라고 생각하고 기다리며 온 마음으로 응원한 그 순간 Hello Future의 전주가 들려왔다. 이어지는 We go up,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Trigger the Fever 가 나왔을 땐 정말 기절할 뻔 했다. 아니 이 곡을 여기서 해준다구요?의 느낌으로 팬들은 목이 터져라 응원했고 멤버들도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해 뛰고 또 뛰고 이쯤 되면 무대를 정말 '해낸다'의 지경까지 온 것 같았다. 대망의 마지막 곡은 정규 1집의 타이틀곡인 '맛 (Hot Sauce)'으로 그야말로 콘서트용 무대를 만들기에 너무나 적합한 곡이었다. 이쯤되면 옆사람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할 수 있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렇게 신나는 곡인지 몰랐다며 믐뭔봄을 더 힘차게 흔들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도 분위기를 미치게 만들어 주었다.
케이팝 쳐돌이라면, 콘서트 좀 가봤다 하면 알 것이다. 멤버들이 마지막곡입니다. 하는것이 진짜 마지막이 아님을. 당연히 앵콜을 외치고 당연히 앵콜 레퍼토리가 기다리고 있음을. 앵콜 첫 시작은 2집 리패키지 앨범의 타이틀 곡인 Beatbox였다. 흰색의 콘서트 공식 티셔츠에 팬덤 공식색인 펄네오샴페인 (밝은 연두색)색의 바지를 입고 등장했다. 이번 콘서트 세트 리스트 중 가장 놀랐던 곡인 Dear Dream 을 부를 땐 좌석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칠드림 (일곱명의 멤버가 모인 드림을 일컫는 말) 이 잠시 헤어질 당시 불렀던 노래로 이 노래를 칠드림이 모두 모인 첫 번 째 콘서트에서 불러줄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과거를 마주하는 지금 이제는 슬프고 아쉬웠던 기억을 행복했던 기억으로 덮어 주는 엔시티 드림의 배려와 사랑이 느껴졌다. 1일차와 2일차에 다른 노래를 부른 것도 욕심이 느껴지는 노래 구성이었다. 1일차에는 별 밤, 2일차에는 Rainbow를 선곡하였는데 앞으로는 헤어지지 않을 것이고 불안감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며, 엔시티 드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멤버들의 일관된 의지를 보여주는 소감과도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첫 번 째 드림쇼 때도 앵콜 마지막곡을 장식했던 같은시간 같은자리는 이번에도 역시 앵콜 마지막곡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이번엔 멤버들이 직접 만든 믐뭔봄 응원 루틴도 따라하며 더울 즐겁게 무대를 즐겼다. 해찬은 가장 마지막 가사인 '이따 두 시 거기서 우리 다시 만나자' 를 '사랑하는 시즈니 우리 다시 만나자'로 바꿔 부르곤 하는데, 정말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드림과 다시 만날 그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어진다.
콘서트의 목표는 가수가 해왔던 노력, 그들이 가진 생각과 에너지, 열정을 응집하여 몇 시간의 무대에서 터뜨려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콘서트를 관람하는 팬들은 단 몇시간 만에 내 가수에 대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흡수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 엔시티 드림의 콘서트는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느껴진다. 사실 최근 몇년 간 코로나 여파로, 개인적인 사정으로,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제대로 된 케이팝 덕질을 못하고 있어서인지 이제 덕질에 대한 내 열정이, 내 마음이 여기까지인가보다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럴리가. 단 이틀간의 공연으로 모든 열정과 호르몬은 완벽하게 회복되었고 마음은 다시 돌아 처음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처럼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엔시티 드림은 여러가지 조건으로 인해 철저히 현재만을 바라보던 팀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제 미래를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물론 백퍼센트라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한 번 믿어보고 싶을 만큼 그들의 굳은 의지가 내 마음을 두드린다. 콘서트 후기로 시작해서 평드(평생드림팬)를 다짐하는 이상한 글을 쓰며 다시 한 번 묻는다. 왜요? 제가 평생 엔시티 드림 좋아할 사람처럼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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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Bold Type ] 2030커리어우먼들을 위한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동화
디즈니플러스, HBO, 쿠팡플레이, 애플티비 등의 OTT 플랫폼이 춘추전국시대마냥 난립하는 요즘, 내가 아직까지는 넷플릭스 외의 OTT에 눈길을 줄 마음이 없는 이유 하나. 넷플릭스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와 TV시리즈의 양이 너무나 방대하여, 넷플릭스 자체 컨텐츠만으로도 일상생활 중에 OTT시청에 쓸 수 있는 시간을 거의 다 소모하기 때문이다. OTT플랫폼이 기존 메이저 제작사들의 대안 수준이 아니라 그 자리를 위협하는, 혹은 이미 넘어서는 강자로 떠오른 요즘 트렌드에 걸맞게, 오늘은 최근 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컨텐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The Bold Type>을 소개해 볼까 한다.
<The Bold Type>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뉴욕, 그 중에서도 더더욱 화려한 업종 중 하나인 패션잡지에서 일하는 20대의 세 여성 제인(Jane), 서튼(Sutton) 그리고 캣(Kat)이 주인공이다. 각기 다른 성장배경과 가치관, 성격 등을 가진 세 주인공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커리어우먼으로서 각자의 커리어와 연애, 남자, 미래 등으로 고민하고 갈등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참고로 연애와 남자를 각각 따로 쓴 이유는 주인공 중 캣이 그동안 쭉 남자만 만나 왔으나 결국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깨닫고 여성들과 연애 고민을 하는 것이 그녀의 주요한 서사이기 때문이다.) 총 5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이들은 현대사회의 일하는 2030여성들이 누구나 할 법한 고민과 겪을 법한 경험들을 거친다. 지금 하는 어시스턴트 업무보다 더 적성에 맞는 일이 있지 않을까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회사에 손실을 가져와 회사에서 잘리는 바람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거기에다가 패션잡지라는 업종의 특성에 맞게 자신의 기사나 트윗 하나가 온라인 상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사이버불링을 당하는데 그 와중에 캣은 ‘너에게 찾아가서 너를 강간하겠다’고 협박하는 남자들의 악플 폭탄을 받거나, 서튼의 경우 아름다운 외모와 밝은 성격을 이용하여 남자 임원을 꼬셔서 승진한 것 아니냐며 악의적인 뒷소문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렇듯 드라마는 2030여성들이 ‘일하는 여성’이기 이전에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공통적인 고민과 더불어,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페미니즘과 여성인권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을 들을 수 있는 등 지금 시대의 우리들이 일하는 ‘여성’이기에 겪는 부당한 공격과 편견들도 잘 녹아 있다. 여기에 덧붙여 백인이지만 가난한 가정 출신으로 부모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정글 같은 뉴욕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제인과 서튼, 반면 부유한 부모 덕분에 돈 걱정을 하지 않고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왔지만 흑인과 백인의 혼혈이라는 인종적 핸디캡에서 자유롭지 못한 캣의 갈등 등, 성별 외에도 인종과 경제력 등의 요소를 두고 갈등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현대사회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더불어서 일하는 여성이라면 현실에서든 가상매체에서든 필수적으로 등장해야 하는 결혼과 아이에 대한 고민이 빠질 수 없다. 대략 2010년 이전쯤의 미디어에서 커리어우먼들이란 ‘가족과 아이의 소중함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라는 조롱 섞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화려한 외관과 쇼핑에만 환장하며 콧대 높게 굴다가 나중에 후회하거나 혹은 냉철하고 인간미 없는 마녀처럼 일만 추구하지만 결국은 가족 없이 초라하고 외롭다는 식의 평면적인 설정이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그렇게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하다가 결국은 소박하고 따뜻한 남자와 진정한 행복(?)을 깨닫는다거나. 그러나 2020년대를 사는 우리 2030 여성들의 자아와 삶은 그렇게 단순하고 이분법적이지 않다. <The Bold Type>의 세 주인공들은 마지막 시즌인 시즌 5까지 남자와 아이 대신 일을 좇는다고 해서 인간미 없는 외톨이 마녀로 포지셔닝하거나 화려한 커리어우먼의 삶을 포기하는 대신 아이의 웃음소리 가득한 소박한 일상에 행복해한다는 식의 구닥다리 연출에서 벗어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일원으로써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실패와 시련을 겪으며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듯이 그녀들 역시 단점도 있고 약한 모습도 보이고 때로는 선택을 후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차고 씩씩하게 자신의 발로 일어서는 독립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성이 돋보인다.
그러나 <The Bold Type>은 동시대 2030여성들을 위한 현실감 돋는 고발성 리얼리티가 아닌 일종의 ‘동화’이기도 하다. 제목에서 언급했듯이, 세 주인공이 직장인 그리고 직장여성으로서 겪는 크고 작은 경험들은 분명 현실적이지만, 이 드라마의 톤(tone)은 애초에 무겁고 비장하지 않다. 그녀들의 고민과 시련은 드라마의 러닝타임인20~30분 안에 마무리된다. 누군가 해결해주거나, 무섭게만 보였던 상사가 적절한 조언을 해 주며 편들어주거나, 나를 쉬운 데이트 상대로만 취급하는 줄 알았던 돈 많고 잘 나가는 남자 임원도 사실은 나와 진지하게 만나고 싶어하거나 혹은 주인공들의 편이 아닌 단역들에게 ‘사이다’를 먹이고 끝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일상 속 고민들은 명쾌한 결말 없이 지지부진하게 반복되거나 애초에 해결책 자체가 별로 없기 마련이다. 나의 현실과 비슷해서 공감하며 감정이입할 수 있는 창작물을 보고는 싶지만 그렇다고 창작물에서도 똑같이 구질구질한 리얼리즘을 보고 싶지는 않은 그런 수요층을 위하여, 현실적인 고민과 비현실적이고 빠른 해결을 통해 현실과 판타지의 균형을 맞춘 그런 동화. 리얼리티에 대한 몰입과 대리만족으로 얻는 카타르시스 사이의 어디쯤에 자리잡아야 할까? 2030여성들을 타겟으로 하는 창작물이 방향성을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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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고추리반 ] 여고추리반 시즌3를 기다리는 이유
엊그제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엄청 사랑스러운 장면을 목격했다. 서점 내에 입점한 카페는 유리벽이 칸막이처럼 세워져있어 안쪽에 사람들이 훤히 보였다. 유독 내 시선을 사로잡은 그 장면은, 중년쯤 되어보이는 한 여성이 테이블에 앉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는 품에서 조심스레 책 한 권을 꺼낸다. 명탐정 코난. 그리고 테이블에 커피잔을 잘 정리하더니 잔뜩 설레는 표정으로 책을 펼치고 표지부터 아주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책장을 두어장쯤 넘겼을 때 내가 그 자리를 떠났으니, 결국 그 분이 카페에서 완독을 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설레는 표정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나 역시 코난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나 보다. 사실 김전일을 더 좋아한다. 셜록? 사랑하지. 추리소설의 세계는 유구하게 소녀들을 설레게 했다. 그것은 기름에 발화되는 불꽃처럼 당연한 결합일지도 모른다. 비록 그 세상의 주인공이 매번 남자였기에 때로 분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오랜 기간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왔다. 소녀들이 주인공인 추리세계가 소녀들을 설레게 하는 날이 오기를.
그리고 여고추리반을 만났다.
여고추리반은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로, 시즌 1은 21년 1월에, 시즌 2는 21년 12월에 공개되었다. 대탈출 등으로 유명한 정종연 PD의 작품이며, 박지윤, 장도연, 재재, 비비, 최예나가 중심인물로 출연하는 ‘미스테리 어드벤처 웹예능’이다.
제목 그대로, 다섯명의 출연진이 여고생이 되어 추리반(동아리)으로서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진실을 찾아가는 내용이기때문에, 자연스레 여성들의 서사가 중심을 이룬다. 호들갑을 좀 떨자면, 한반도는 현재가 해방이래 여성 서사가 가장 대두되는 시점인 것 같다. 지구오락실이나 작은아씨들을 보며, (물론 갈 길이 아직도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조명되고 그것을 누군가는 궁금해한다는 측면에서 고무적이라고 느낀다. 여고추리반 역시 여성들의 이야기다. 기존에 남성들에게나 주어지던 역할, 그들의 조합, 그 조합을 통해 발생하는 서사들이 드디어 여성들의 차례로 돌아온 것이다.
누군가의 엄마나 누나, 혹은 딸같은 ‘상대적’인 형태의 ‘부여받은 역할’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예를 들어 박지윤은 남성들과 함께였다면 ‘팀의 엄마같은 살림꾼’ 혹은 ‘야무진 큰누나 느낌’ 따위로 설명될 수도 있었겠지만, 여고추리반에서는 그저 상황을 정리하고 유연하게 대처해나가는 어른스러운 ‘대장’ 역할을 한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 상관없이 이야기 속 하나의 기둥으로서 존재한다. 특별하지않기 때문에 특별한 것들이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의 조합 또한 비슷하다. 사실 처음 여고추리반의 구성을 보았을 때는 일관성 없고 낯선 조합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그런 남성 중심의 예능은 얼마나 많았던가. 아는 형님이라고, 1박2일이라고 뭐 대단히 찰떡같이 조합이었던가. 아이돌그룹도 아니고, 예능 속에서는 제멋대로의 들쑥날쑥한 조합이 날 것의 재미를 그려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상황 속 케미를 읽어낼 수 있는 건 대중의 몫이다.
때로 ‘여적여’ 프레임 때문에 도리어 여자끼리는 경쟁해서도 안 되고 갈등을 일으켜서도 안 된다고 일종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처럼 스스로 옥죄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여고추리반을 보며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결국 가장 합리적인 형태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의 궁극적 목적이 생존이라면, 도리어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음으로써 생존한다면 굳이 시간과 에너지를 상호 낭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출연진 다섯 명은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서로에게 미안해하면서도, 또 각자의 몫을 해낸다. 여자들은 늘 1인분 이상을 하면서도 2인분을 하지 못해 부끄러워한다. 그마저도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생존하는 데 자신의 짐이 타인에게 나누어질까봐 그렇다. 여자들이라고 대단히 착한 유전자가 박혀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모두 인간 아닌가. 다만 본능적으로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가 드러날 수 있는 것은 여고추리반만의 독특한 형식에 기인한다. 그것은 ‘요즘 예능’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드라마인가 페이크다큐인가 게임의 실사화인가.
제작진들은 설정과 배경들을 모두 치밀하게 계획하고 그 안에 출연진을 던져둔다. 인물이 등장하는 시점이나 그 인물의 대사나 행동은 정해져있다. 의도한 바에 따라 짜여진 각본은 드라마와 같지만, 그것이 콘텐츠화되는 것은 그에 대한 출연진의 반응이다. 세계관 속 인물이 죽었을 때 안타까워하는 것, 그 인물에게서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가 왔을 때 놀라고 무서워하는 것, 그럼에도 문제들을 파고들어 해결하고자 하는 것, 그래서 결국 분석하고 답을 내리는 것은 출연진의 의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모든 것들이 제작진 혹은 출연진 어느 한쪽만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는 없다. 그것은 일종의 정-반-합처럼 상호간의 힘겨루기를 통해 마침내 방송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드러난다.
비슷하다고 느꼈던 크라임씬과는 이 지점에서 차별화된다. 크리임씬은 스스로 역할극을 한다. 그 안에서 범인도 있고 탐정도 있다. 설정은 주어지지만 출연자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서사는 새롭게 구축된다. 그러나 여고추리반은 서사마저 주어진 상황에서, 출연자와 시청자간의 연결고리를 강화한다. 출연자들은 시청자처럼 사전 정보가 없고, 시청자들은 출연자의 시점에서 일종의 ae 처럼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유대감은 갖게 된다. 이는 방송보다는 게임 쪽에 가깝게 느끼도록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시즌 1 초반부에서, 출연진들이 매점에 갔을 때, 지난 번에 봤던 남자 사장님은 없고 여자 사장님은 있다. 여자 사장님께 이런 저런 질문을 하지만, 그는 아는 것이 별로 없는지 잘 모르겠다는 답만 반복한다. 이 짧은 과정에서 굉장히 게임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에서 아이템을 얻기 위해 공간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닌다. 찾게 된다면 그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이는 의미없는 헛된 행동이기도 하고, 당시엔 쓸데없어보였지만 후에는 큰 도움이 되는 행동이기도 하다. 실제로 정종연 피디는 콘솔게임에 있는 캠페인 모드와 비슷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시나리오는 이미 던져졌지만, 그것을 어떻게 접근해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출연진의 역량이고 시청자는 출연진에게 몰입할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정종연 피디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김태호, 나영석, 거슬러 올라가 김영희, 이명한 정도나 언급되었던 피디들은 이제 저마다 대표작을 가지고 각자의 연출색이나 스타일 등이 일반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논의되는 명실상부 ‘창작자’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씨제이는 그 자체로 브랜딩되는 스타 피디를 꾸준히 양성해왔다. 정종연 피디 또한 그러한 콘텐츠-피디 라벨링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올라탄 인원 중 하나인데, 출세작 더지니어스부터 대표작 대탈출, 그리고 최근작 여고추리반까지 ‘두뇌게임’으로 표방되는 작품들을 연출해왔다.
그의 작품들을 제대로 다 본 것은 아니지만, 간단히 정리하자면 제한된 공간과 설정 속에 출연진을 던지고 그들의 역량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면서 재미를 만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한창 뮤직비디오에 관심이 집중되던 2000년대 초반 엠넷으로 입사해 씨제이맨으로 20년 근속한 그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투입하는 창작자로서의 자아를, 동시에 티빙 오리지널이란 독특한 플랫폼에 합류한 이유를 답할 때처럼 일종의 회사원으로서의 자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양면적이고 불안정한 정체성은 여고추리반 속의 이야기 속에서도 드러난다. 그 속의 npc같은 인물들마저 각자의 욕망이 복합적으로 충돌하고, 완전히 선하다기보다 자신만의 이유를 품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내심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을까 하고 유심히 살펴보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지난 작품부터 꾸준히 지적되어오는 표절 혹은 유사성 문제는 추리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방송 콘텐츠라는 포맷 때문인지 체계를 갖춘 논리력 기반의 추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몸빵 형식으로 힌트를 줍줍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클리셰의 작동으로 지레짐작하는 것들이 맞아떨어질 때도 많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남편찾기처럼 반전에 집착한 나머지 보여주어야 할 것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는 듯 ‘불공정한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인스타그램이나 유투브 계정을 실제로 만들어둔다거나 스릴 넘치는 타이밍의 정전 같은 연출은 굉장한 성의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렇기에 팬들은 그곳에 더 몰입한다는 것을 마치 알고있는 것처럼. 이처럼 물론 한계도 명확하고 단점도 없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소녀를 설레게 하는 것은 추리물이다. 특히 소녀들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 응원은 한층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CSI 시리즈의 대 히트 이후 미국의 여학생들 장래희망이 바뀌었다는 그 이야기처럼, 앞으로 나아간다면 누구든 그 미래를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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