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무임승차입니다.
도서, 영화, 전시, 음반, 공연, 방송, 맛집, 신제품 등 분야의 경계 없이
각자의 콘텐츠 경험, 배경 지식, 취향을 자유롭게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문화 자산에 무임승차합니다.
월 2회, 마트 쉬는 다음날 발송됩니다. (가끔은 그 주 어느날에)
마트 가는 즐거움 이상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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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Healing
그림 속 네 명의 숙녀들이 함께 소리 내어 노래 부르고 연주하네요. 푸르른 밤의 공기가 내려 앉은 시간, 두 개의 촛불이 밝히는 조용한 공간에 퍼지는 피아노 소리를 상상해 봅니다. 일렁이는 초의 그림자 사이로 음표가 보이고 여인들은 악보에 더 집중합니다. 이렇게 넷이 모인 이 날은 누군가 떠나는 마지막 날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기쁨의 날일까요. 그림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 기울여보면 어느새 나도 저 공간 어디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듭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shymphony 라고 해요. 심포니는 교향곡을 뜻하지요. 교향곡은 ‘소리의 조화’를 뜻하는 그리스어 ‘쉼포니아’에서 왔다고 해요. 심포니는 더 넓은 의미로 ‘함께 소리를 낸다’는 의미도 담고 있어요. 무임승차 뉴스레터에서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소리를 내는 모습이 꼭 이 사진 속 주인공들 같아요. 이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글과 그림, 추억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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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이 가득한 일상에 조금 다른 색 입히기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
얼마 전 인터넷을 하다가 화면 한 켠 배너광고에 아주 예쁜 전통 채색화가 있는 것을 눌러보았다. 그것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의 광고였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한 번도 가본적이 없어, 어떻게 가야하는지도 너무 생소했다. 일단 전시회를 꼭 보고싶다는 생각만 해 두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흘러 전시 종료를 일주일 앞둔 9월의 어느 맑은 혹은 흐린 토요일 오전, 동생과 함께 과천 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은 서울 대공원 입구에서 코끼리 열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 어렸을 때 타봤던 코끼리 열차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5분정도 달려 도착했다. 다시 오르막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니 언덕 위에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 진듯 엄청난 규모의 미술관 건물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야외 조각공원에는 큼직한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가운데 큰 돔형태를 가지고 있는 미술관 건물은 양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어 미술관에 들어가기도 전에 엄청난 기대를 하게 되었다.
총평 :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 하나만 넘어서면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시회는 너무나 특별했고, 마음을 감동시켰고, 이것을 더 일찍 관람하고 소개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만들었다. 전시 종료가 9월 25일이라서 이 뉴스레터가 발행될 때 쯤이면 더이상 전시를 관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시의 시작부터 끝까지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인도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그림이라하면 수묵화가 주류였고, 채색화는 민예품과 장식화로 분류되어 그야말로 비주류에 가까웠다. 하지만 주류에서 밀려난 채로 소외되어 있는 그림이 아니라 보다 일반인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벽사(삶 속에서 나쁜 기운을 몰아냄), 길상(장수와 부귀영화를 가져오는 좋은 기운을 불러들임)의 상징이었다. 또한 책가도와 문자도로서 학문을 숭상하고 명심해야 할 중요 문구를 마음에 새기는데도 활용하였고, 기록화와 감상화로서 개인과 나라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길 뿐 아니라 이상적인 산수풍경을 통해 인간의 의식을 고양시키기도 하였다.
이 전시에서는 채색화의 기법이나 재료 뿐만 아니라 위에 설명했던 것처럼 지난 100여년간 근현대의 채색화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과 역할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큰 한옥을 구경하는 것처럼 한옥의 입구, 사랑채, 중간정원, 깊숙히 놓여있는 안실을 지나 그 한옥을 감싸고 있는 산수에 이르는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시회를 둘러 볼 수록 채색화가 제작된 당시의 사람들처럼 시간이 흘러 관람하는 나도 그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몇 작품을 소개해 보려한다. 전시의 마중이라 표현한 영상물이 재생되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사방의 벽에 춤을 추고 있는 처용이 보였다. 머리에 모란과 복숭아를 얹고 21세기 현재로 소환된 처용은 골목길에서, 바다에서, 숲에서, 도시에서 그의 춤으로 벽사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현 시대 인간의 폭력성마저 정화시키고자 하는 기원을 담고 있다는 설명을 보았다. 그리고 서서히 비워져가는 한 쪽 벽면에 노란색 조명이 들어오고 그곳에 서있는 관람객인 내가 또 하나의 처용이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 마음을 정비하고 전시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고 느껴졌다.
전시실의 넓은 공간으로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한 쪽 벽면을 아주 크게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호랑이 그림이었다. 대표적인 민화의 소재였던 호랑이를 그린 대호도를 재해석 하여 옻칠로 제작된 작품 속에서 검은 바탕에 금 빛 털을 가진 호랑이가 형형하게 눈을 밝히고 있었다. 호랑이 주위를 둘러싼 소나무의 이파리 하나하나도 너무나 세밀하게 묘사되어 소나무 숲에서 호랑이를 맞닥뜨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문 앞의 벽사 이미지를 통과하자 십장생을 시작으로 길상 이미지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근대의 채색화 작품들과 함께 그것들을 새로 해석한 현대의 작품들을 함께 관람할 수 있어 전체적인 시간의 흐름과 시간이 흐름에도 변하지 않는 이미지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특히 모란도 십폭병풍을 재해석한 손유영 작가의 모란숲이라는 작품은 올 해 완성된 것으로 모란숲 사이사이에서 뛰노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아주 귀엽게 표현되어 있었다. 길상의 대표적인 작품인 화조도를 재해석한 김근중 작가의 꽃세상 속 꽃들과 큰 앵무새들은 그 사이에 YOU가 크게 쓰여진 의자에 한 번 앉아보고 싶을 만큼 생명력이 느껴졌다.
문자도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안상수 작가의 문자도 흘려라 라는 작품이었다. 한글 프로그램 사용자라면 익숙한 안상수체를 만든 장본인이었다. 히읗과 리을의 역동감있는 조화로 깨끗한 하얀 바탕에 검정색 글씨에서 힘과 리듬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신기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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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관람을 모두 마치고 다시 입구쪽으로 나오니 들어올 때는 꺼져있던 백남준 작가의 작품 다다익선 텔레비젼 화면 하나하나에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다다익선은 1988년 과천관이 세워질 때 설치했던 작품으로 시간이 지나며 텔레비젼들이 고장나 오랫동안 꺼져 있었는데, 대대적인 복원작업을 거쳐 다시 가동을 시작했고, 기념 전시회 <다다익선 : 즐거운 협연>도 함께 열리고 있었다. 작품을 설치하고 유지하고 복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협업하고 노력했는지 그 증거들을 인터뷰와 문서, 재해석의 형식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는 내년 2월까지 이어지므로, 꼭 한 번 관람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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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말해봅니다 올해 최고의 여행 뽐뿌 책
퀸즐랜드 자매로드
나의 마지막 해외여행은 2019년 12월이다. 생각해보면 운좋게 막차를 탄 셈이었다. 돌아오던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이토록 오랫동안이나 새로운 여행을 못 가게 될 줄 알았을까. 누구라도 몰랐을 거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기약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일년에 한 두번 떠나는 그 여행이 지난한 직장생활을 견디게 해주는 마약이었고 동시에 직장생활을 하는 이유 그 자체이기도 했다. 직장을 다녀야만 돈을 벌 수 있고 휴가를 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는 여행을 3년째 못 가고 있다. 그 기간에 내 감정변화는 퀴블러 로스의 죽음을 맞이하는 분노의 5단계와 유사했다. 부정하고 분노했다. ㅎㅎ 설마, 곧 갈 수 있겠지. 아니 이럴 수가! 믿을 수 없다. 이태원 신천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남의 나라 지도자. 모두 불타 죽으리라. 그러다가 타협. 어차피 남들도 다 못 가는 여행, 이 기회에 그동안 못 했던 것들이나 해야겠다. 틈틈이 자기소개서를 썼다. 그 와중에도 사태는 나아지지 않으니 우울해졌다. 그리고 종내 수용.
차라리 여행 관련된 모든 것에서 멀어지고자 했다. TV 예능 프로그램도 유투브 영상도 온라인 쇼핑에서도 해외여행과 조금이라도 맥락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요소들은 차단해버렸다. 어느덧 엔데믹이 언급되는 이 시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났고 계획을 세우고 있더라. 모르는 척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그리움이 댐 터지듯 쏟아졌다. 생생한 여행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장 떠나고 싶도록, 이미 떠나 온 것처럼 느껴지도록, 대리 만족이든 동기 부여든 그 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책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김하나, 황선우의 '퀸즐랜드 자매로드'!!
15년 전쯤 가족들 다같이 패키지로 호주와 뉴질랜드를 다녀온 적이 있다. 자연 풍경이 멋졌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 같은데 그 뿐, 이후에도 또렷한 추억이 기억나거나 감흥이 생기진 않았다. 그럼에도 이 여행기를 굳이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저자 때문이다. 김하나 작가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 친구들에게) 여러모로 굉장히 큰 영향을 주었다. 최초의 '무임승차' 모임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에서 언급된 얕은 지식 세미나를 보고 인상 깊어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책읽아웃의 애청자로서 힘빼기의 기술이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어가며 황선우 기자까지 응원하게 되었고, 이제는 여둘톡의 애청자이기도 하다. 다채로운 커리어와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해준 두 분 덕분에 일종의 롤모델이랄까 참고할 만한 좋은 샘플 중에 하나 (아니 둘인가) 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믿고 보는' 브랜드인 셈이다.
솔직히 책을 펼치면서도 호주 여행 자체에 대해서는 반신반의(?)였는데, 책을 덮는 순간 꼭 호주에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벅차올랐다.
꼭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포인트 첫 번째, 활자만으로도 눈부신 햇살과 해변이, 숲 속 나무들이 서로 스치며 내는 소리가, 때로는 뜨겁고 대체로는 따뜻함과 서늘함을 오고가는 기온이 느껴졌다. 어쩐지 아늑한 기분을 느끼며 사람들이 바르셀로나를, 캘리포니아를 사랑하는 이유가 이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마천루와 쭉 뻗은 해변이 공존하는 골드코스트, 소박하면서 시원시원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브리즈번에서의 감상은 읽는 것만으로도 힐링할 수 있을 정도.
두 번째, 동물들!!! (나 역시 이 단어를 치고 잠시 일어서서 필라테스 호흡으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김하나 작가의 코알라 사랑 부분을 읽다보면 누구라도 코알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목끝이 간질간질, 심장이 몽글몽글해지는 그 기분, 어찌 공감못하리오! 뿐만 아니다. 새폴더 이름에서나 친숙해진 가마우지나 만화 캐릭터 따위로 치환되어 상상하게 되는 펠리컨 등이 등장할 때마다 하릴없이 감탄하게 된다. 거기에 애초에 선입견조차 없는 웜뱃까지 더해진다면!? 시야가 좁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남반구라는 세계 자체가 우주의 타행성마냥 신기하고 완연히 낯선 세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 번째, 여행의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인 먹거리! 호주에는 아직 미슐랭이 도입되지 않았다고 하던데, 에머로드 햄튼에 대한 이야기는 미슐랭보다도 더 신뢰가 가는 아름다운 칭송이었다. 지역명인 투움바나 아웃백을 보면서도 패밀리 레스토랑을 떠올리던 재미없고 심심한 미식 상상력에서, 팜투테이블이라는 멋진 개념을 이해하고 제철의 알록달록 채소들을 당장이라도 맛보고 싶어지기까지 고작 만육천원의 독서 경험으로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술을 잘 마시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데도 코끝에 향긋한 와인이 닿는 이 실감나는 묘사라니.
네 번째는 의외로 아웃도어 액티비티였다. 나는 겁도 많고 집순이 성향이 강해서, 여행 가서도 투어나 동행에는 일절 끼지 않고 혼자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구경하고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책에 빠져들면 패들보딩이나 모래언덕에서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썰매타기 등을 해보고 싶어져서 엉덩이가 들썩거리게 된다. 무엇보다 서핑!! 나의 버킷리스트 한켠을 차지하게 되었다. 햇빛으로 탄 피부가 여행의 그 순간의 증명이라는 문장을 나만의 단어로 오독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은 여행을 즐기는 그들의 태도였다. 함께 캐치볼을 하고 맛있는 것을 나눠먹고 밤을 지새우며 서로의 흥을 돋운다. 같이 살며 지겨울 법도 한데 고급 호텔 넓은 방을 함께 쓴다. 그야말로 즐거움을 나누며 두 배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각하게 한다. 동물원 대신 생츄어리를 구경하고, 플라스틱 생수 대신 브리타를 구매하게 되는 것. 촘촘한 인구 밀도에 이리저리 치이다가 뻥 뚫린 세상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해방감이 어째서 이토록 와닿는지, 왜 중요한지 명확한 언어로 설명하는 것. 그야말로 남녀노소,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가 어울리는 꽃 축제에서 읽어내는 사회적 메시지까지도.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마냥 가볍게 들뜨지는 않도록 산뜻하게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는 점이 그랬다. 그러니까 여행 그 자체가 의미있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선물해주는 책인 셈이다.
사실 그 어떤 긴 말들보다도, 한 마디로 설명 가능하다. 독자로 하여금 가고 싶게 만들다니 그야말로 최고의 여행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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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과 오타쿠와 거기에 방탈출까지, 본격 미스터리를 실험하다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
주제를 막론하고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말이 흔히 쓰인다. 수많은 후계자와 아류, 혹은 원작을 뛰어넘는 도전자들이 뒤따를지라도 어떤 한 분야의 선구자, 명작, 고전 등은 영원히 그 자체로서 기준이 된다. 추리소설 또한 그렇다. 영미권의 고전 추리소설 명작들이 탄생한 이후 창작된 모든 추리소설들은 태생적으로 그러한 클래식 명작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클래식은 영원히 표준이 될 지언정 오로지 그것만이 절대적인 가치 혹은 우위를 가진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 혹은 다양한 사회적 배경에 맞추어 유연하게 변형된 클래식이 또 하나의 클래식으로 자리잡기도 하니 말이다. 예를 들면 피자의 원형은 다들 알다시피 이탈리안 음식이지만, 한국식 불고기 피자는 어느새 한국에서는 클래식한 피자 메뉴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듯이.
최근 접한 아쓰카와 다쓰미의 소설집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는 어떻게 ‘본격 미스터리’라는 클래식한 분야를 낯선 설정이나 새로운 시대적 배경에 접목시켜 재탄생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유쾌하고 신선한 도전이다. 사건이 일어나고 수수께끼 풀이를 한다는 미스터리의 절대적인 틀은 유지하되 최신 문화를 이야기의 키워드로 삼거나 혹은 아예 리얼리티 대신 특수한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표제작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부터가 타임머신, 복제인간, 냉동인간 등과 함께 인류의 영원한 호기심의 대상 중 하나인 투명인간을 소재로 하여 ‘투명인간이 보통의 인류와 공존하는 사회’를 설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과거 <프랑켄슈타인>이나 <드라큘라> 등의 고전 명작과는 달리 특수설정 자체가 이야깃거리가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수수께끼를 어떻게 논리적으로 풀어내느냐가 핵심이다. 투명인간이 살인을 저지르고 살인 현장인 밀실에 숨어버렸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용의자를 어떻게 여기서 찾아내어 범행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이 외에 발자국 소리로 사람을 구분하는 등 초인간적인 청력을 가진 탐정 조수와 헐렁하고 허세 심한 탐정 콤비가 오로지 살인 현장의 소리만을 단서로 하여 범인을 밝혀내는 <도청당한 살인>까지, 비현실적인 세계관에서의 논리적인 사건 해결이 신선하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이 외의 다른 수록작들은 100여년 전 집집마다 집사와 메이드가 있고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의 영국이나 미국 대신, 지금 바로 여기의 우리 시대 문화를 소재로 삼고 있어 흥미도와 몰입감을 높인다. 살인 용의자가 된 아이돌 오타쿠를 판결해야 하는 배심원들이 알고 보니 같은 아이돌의 오타쿠들이라면 어떤 판결을 할까? 누군가의 ‘덕후’라면 어딘지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을 것 같은 <6명의 열광하는 일본인들>은 아이돌 오타쿠와 일본의 배심원제를 섞은 유머러스한 상황과 전개가 돋보인다. 여기에 1인칭의 추리 콘솔 게임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도 하나의 취미로 자리잡은 방탈출을 동시에 소재로 한 <13호 선실에서의 탈출>까지, 93년생인 작가의 나잇대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지금 문화와 유행을 주도하는 세대여서 가능한 도전정신이다. 게다가 단순히 신선한 시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 단편의 완성도와 퀄리티도 높아서, 개인적으로는 추리소설에서 비현실적이고 특수한 설정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소설집에서 특수한 소재들은 마치 치트키처럼 사건 해결에 쓰이는 방식이 아니며 앞서 말했듯이 모든 수록작들이 본격 미스터리라는 틀과 독자를 위한 공정한 게임 룰을 지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통통 튀는 도전 속에서도 각 편의 제목이나 창작의 모티브 등은 결국 추리소설이 존재할 수 있도록 기반이 되어준 ‘조상님’들에게서 빌려 왔다. 예를 들면 <13호 선실에서의 탈출>은 유명한 고전 단편 <13호 독방의 문제>를, <6명의 열광하는 일본인들>은 헐리우드 고전 영화 <12 Angry Men>을 패러디했다. 작가 역시 작가의 말을 통해 고전 명작 소설, 영화 등에 대한 애정과 존경 그리고 자신의 작품 역시 그들이 모티브임을 숨김 없이 드러낸다. 추리소설이라는 분야가 세상에 탄생한 이래 수없이 다양한 갈래가 뻗어 나오고 있지만, 학문, 연구 분야에서도 ‘거인의 어깨’라는 표현이 쓰이듯이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클래식’이 출발인 셈이다.
본격 미스터리의 원형은 유지하되 새로운 시대상이나 특수설정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이런 작품을 지금은 신선하고 새로운 도전이라고 평가하지만, 언젠가 수 십, 수 백 년이 지난 후의 추리소설 팬 후손들은 이를 ‘2000년대의 클래식’이라며 교과서처럼 다룰 날이 올까? 아쓰카와 다쓰미가 요즘 일본 추리소설계에서 가장 핫한 젊은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하는데, 한국에 언제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이 소개될지 손꼽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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