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물’(버디 영화)는 두 사람이 파트너, 짝꿍을 이루어 활약하는 오락 영화의 한 스타일이다. 미국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오락영화 중 가장 선호되는 장르의 하나라 할 수 있겠다. 우선 너무 무겁고 부담스럽지 않은 경찰 코미디 류의 영화가 대부분이기에 남녀노소 부담 없이 볼 수 있으며, 나이, 성격, 스타일 등이 정반대인 배우들의 투톱 캐스팅으로 시너지 효과를 낸다. 파트너임에도 상극이어서 티격태격하다가 갈수록 호흡을 맞추는 과정을 통해 적절하게 기승전결을 만들 수 있고, 아무리 부패 형사라도 결국은 경찰이기 때문에 공동의 목표인 ‘나쁜 놈’을 쫓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과하게 평면적인 선역과 악역 대립 없이도 은근히 권선징악의 결말을 유도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안성기-박중훈 콤비의 <투캅스>를 성공한 버디 무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닳고 닳아 적당히 부패한 형사이자 범죄자들을 폭력으로 다스리는 안성기와 정의감 넘치는 열혈 형사 박중훈이 파트너로 열연한 <투캅스>는 시리즈물로 3편까지 나왔을 정도로 90년대 당시로서는 흥행에 매우 성공한 바 있다. 노련한 베테랑-젊은 신참이라는 경찰 버디 무비의 공식을 한국식으로 잘 버무린 경찰 코미디였다.
라미란-이성경이 투톱으로 열연한 2019년작 <걸캅스>는 제목부터 이 <투캅스>를 의식한 듯이 보이는 여자 버전의 경찰 버디 무비이다. 조직에서 구를 만큼 구른 베테랑 라미란과 아직은 조직 논리보다는 정의감과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하는 젊은 형사 이성경 둘이 티격태격한다는 구도는 앞서 말했다시피 지극히 전형적인 버디 무비의 설정이자 캐릭터성이며 <걸캅스> 의 기승전결 자체도 전형적인 버디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 전국 관객 160만 정도의 흥행 성적으로 막을 내린, 그럭저럭 쫄딱 망하진 않았지만 그다지 성공이라 할 수 없는 이 경찰 코미디 영화는, 그러나 그 평범한 흥행 성적과 ‘형사 코미디’라는 꽤나 안전한 장르 치고는 크게 논란을 불러온 바 있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2014~2015년 이후 피할 수 없는 2030세대의 주류 논쟁거리가 되어버린 젠더 갈등 때문일 것이다. 젊은 여성들이 기존에 너무 당연하게 남성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남성 중심적 시선에서 전개되는 창작물에 대해 ‘뭔가 불편하다’고 자각하며 여성 서사에 대한 수요와 담론이 크게 증가했다. <걸캅스>는 이런 사회적 맥락 속에 그야말로 한국남성들에게 물어뜯으라고 던져 준 수준의 모험적 작품이었다.
그 이유는 <걸캅스>가 단순히 버디 무비의 전형적인 캐릭터성과 줄거리를 여자 버전으로 전환한 수준이 아니라, 캐릭터들은 물론이요 배경도 여성 관객들 위주로 타겟을 노렸다. 아예 첫 장면부터 현장에서 활약하는 형사 라미란을 보고 “우와 여자도 형사가 될 수 있구나…”라는 어린 시절 이성경의 대사를 통해 이 형사 코미디가 철저히 여성들의 몫임을 못 박아 둔다. 가뜩이나 여경, 여군 등은 전통적으로 한국 남성들이 심심하면 두들기는 먹잇감 직업인데, 설상가상으로 영화 속 그들이 쫓는 범죄 역시 몇 년 전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불법촬영물 범죄다. 물론 이론적으로야 남성이 불법촬영의 피해자가 되거나 여성이 여성 혹은 남성을 대상으로 불법촬영을 저지르는 경우도 세상에 없지는 않겠지만, 압도적으로 여성이 피해자-남성이 가해자이자 소비자인 대표적인 성범죄이며 2030 여성들 사이에 한국남성에 대한 불신과 혐오, 피로도를 증가시킨 큰 사건 중 하나이다. 이러니 2030 한국남성들은 <걸캅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030한국남성들이 열성 유저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무위키’의 <걸캅스> 소개 페이지를 보면 마치 이 영화가 이슬람 국가에서 알라를 조롱하는 급의 신성모독을 저지른 것마냥 분노하는 그들의 숨결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남성혐오 영화라며 억지 논란을 만드는데, 그 근거가 라미란의 남편이 너무나 무능하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남성 형사들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 무능하게 밥만 축내는 백수 남편은 라미란을 구하기 위해 용감하게 뛰어들고, 여성 형사들을 비웃던 남성 동료들은 반성하며 그들을 돕는다. 심지어 영화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자는 모습만 나왔던 수사 1과 반장(성동일의 우정출연)은 중요한 순간 일어나 라미란과 이성경 콤비를 지원하라고 명령하기까지 한다. 그간 남성들이 점령해 왔던 정치, 수사, 범죄 드라마 등에서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거나 혹은 자기들 뇌내 망상속의 민폐녀로 다뤄 왔을 때 과연 한국남성들 중 몇 명이 불편함을 호소했을까. 영화를 비롯한 창작물은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너무나 당연하게 남성중심적 시선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음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영화가 인터넷 상에서 불러온 논쟁의 크기가 무색하게, 영화 자체는 냉정히 말하자면 돈 내고 즐겨야 하는 오락영화, 상업영화로서는 그저 그런 평작 정도의 수준이다. 그러나 <걸캅스>는 여성이라는 소재에 한껏 민감해진 한국남성들이 보나마나 폭발적인 혐오와 조롱을 쏟아낼 것을 에상하지 못했을 리 없음에도, 도전적인 대사와 설정으로 한 편의 여성 서사 영화를 완성해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영화가 비록 비평과 흥행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이 모험에 충분히 신선하고 멋진 시도였다고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다만 <걸캅스>가 남긴 의문은 자명하다. 여성들이 메인 캐릭터로써 극을 이끌어가는 서사라고 해서, 반드시 ‘코미디지만 사실은 여성인권적으로 진지하고 비장한 대의도 있다’는 식으로 여성주의를 어필하는 것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 여전히 경찰, 군대 등 폐쇄적이고 남성 중심적 조직은 물론이요 평범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성이 겪는 각종 불공평한 대우와 조롱, 모욕 등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여성 캐릭터가 그런 일을 전혀 겪지 않는 듯 눈감고 지나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또한 불편해 할 남성 관객들의 눈치를 보며 여성주의를 접어두라는 말도 아니다. 오히려 나 개인적으로는 조금 덜 재미있고 덜 자극적이어도 다양한 여성들이 나오는 창작물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요는, 여태까지 우리가 ‘남성주의’적인 시선의 영화 및 창작물을 큰 불편함 없이 소비하며 남성주의가 기본값으로 자리잡았듯이, 여성주의가 성별에 관계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도록 자리잡으려면 거창하게 ‘여성’임을 강조하지 않고도, 힘 빼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 미디어물이 이 단계까지 이르기에는 본격적으로 여성들의 이야기가 주류 미디어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조심스럽다. 창작자도 소비자도, 아직까지는 조금 밍밍하더라도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강조한 여성 서사를 택할 것인가, 혹은 MSG가 들어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고를 것인가의 갈등 단계인 듯싶다. 그러나 최근 장르를 막론하고 입체적이고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많아지는 모습을 보면 논쟁과 혼란의 시대를 지나 갈수록 발전하는 한국 내 여성 담론을 보는 것 같아 흐뭇하다.
이렇듯 <걸캅스>는 여성인권에 대한‘버디물’(버디 영화)는 두 사람이 파트너, 짝꿍을 이루어 활약하는 오락 영화의 한 스타일이다. 미국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오락영화 중 가장 선호되는 장르의 하나라 할 수 있겠다. 우선 너무 무겁고 부담스럽지 않은 경찰 코미디 류의 영화가 대부분이기에 남녀노소 부담 없이 볼 수 있으며, 나이, 성격, 스타일 등이 정반대인 배우들의 투톱 캐스팅으로 시너지 효과를 낸다. 파트너임에도 상극이어서 티격태격하다가 갈수록 호흡을 맞추는 과정을 통해 적절하게 기승전결을 만들 수 있고, 아무리 부패 형사라도 결국은 경찰이기 때문에 공동의 목표인 ‘나쁜 놈’을 쫓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과하게 평면적인 선역과 악역 대립 없이도 은근히 권선징악의 결말을 유도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안성기-박중훈 콤비의 <투캅스>를 성공한 버디 무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닳고 닳아 적당히 부패한 형사이자 범죄자들을 폭력으로 다스리는 안성기와 정의감 넘치는 열혈 형사 박중훈이 파트너로 열연한 <투캅스>는 시리즈물로 3편까지 나왔을 정도로 90년대 당시로서는 흥행에 매우 성공한 바 있다. 노련한 베테랑-젊은 신참이라는 경찰 버디 무비의 공식을 한국식으로 잘 버무린 경찰 코미디였다.
라미란-이성경이 투톱으로 열연한 2019년작 <걸캅스>는 제목부터 이 <투캅스>를 의식한 듯이 보이는 여자 버전의 경찰 버디 무비이다. 조직에서 구를 만큼 구른 베테랑 라미란과 아직은 조직 논리보다는 정의감과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하는 젊은 형사 이성경 둘이 티격태격한다는 구도는 앞서 말했다시피 지극히 전형적인 버디 무비의 설정이자 캐릭터성이며 <걸캅스> 의 기승전결 자체도 전형적인 버디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 전국 관객 160만 정도의 흥행 성적으로 막을 내린, 그럭저럭 쫄딱 망하진 않았지만 그다지 성공이라 할 수 없는 이 경찰 코미디 영화는, 그러나 그 평범한 흥행 성적과 ‘형사 코미디’라는 꽤나 안전한 장르 치고는 크게 논란을 불러온 바 있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2014~2015년 이후 피할 수 없는 2030세대의 주류 논쟁거리가 되어버린 젠더 갈등 때문일 것이다. 젊은 여성들이 기존에 너무 당연하게 남성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남성 중심적 시선에서 전개되는 창작물에 대해 ‘뭔가 불편하다’고 자각하며 여성 서사에 대한 수요와 담론이 크게 증가했다. <걸캅스>는 이런 사회적 맥락 속에 그야말로 한국남성들에게 물어뜯으라고 던져 준 수준의 모험적 작품이었다.
그 이유는 <걸캅스>가 단순히 버디 무비의 전형적인 캐릭터성과 줄거리를 여자 버전으로 전환한 수준이 아니라, 캐릭터들은 물론이요 배경도 여성 관객들 위주로 타겟을 노렸다. 아예 첫 장면부터 현장에서 활약하는 형사 라미란을 보고 “우와 여자도 형사가 될 수 있구나…”라는 어린 시절 이성경의 대사를 통해 이 형사 코미디가 철저히 여성들의 몫임을 못 박아 둔다. 가뜩이나 여경, 여군 등은 전통적으로 한국 남성들이 심심하면 두들기는 먹잇감 직업인데, 설상가상으로 영화 속 그들이 쫓는 범죄 역시 몇 년 전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불법촬영물 범죄다. 물론 이론적으로야 남성이 불법촬영의 피해자가 되거나 여성이 여성 혹은 남성을 대상으로 불법촬영을 저지르는 경우도 세상에 없지는 않겠지만, 압도적으로 여성이 피해자-남성이 가해자이자 소비자인 대표적인 성범죄이며 2030 여성들 사이에 한국남성에 대한 불신과 혐오, 피로도를 증가시킨 큰 사건 중 하나이다. 이러니 2030 한국남성들은 <걸캅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030한국남성들이 열성 유저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무위키’의 <걸캅스> 소개 페이지를 보면 마치 이 영화가 이슬람 국가에서 알라를 조롱하는 급의 신성모독을 저지른 것마냥 분노하는 그들의 숨결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남성혐오 영화라며 억지 논란을 만드는데, 그 근거가 라미란의 남편이 너무나 무능하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남성 형사들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 무능하게 밥만 축내는 백수 남편은 라미란을 구하기 위해 용감하게 뛰어들고, 여성 형사들을 비웃던 남성 동료들은 반성하며 그들을 돕는다. 심지어 영화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자는 모습만 나왔던 수사 1과 반장(성동일의 우정출연)은 중요한 순간 일어나 라미란과 이성경 콤비를 지원하라고 명령하기까지 한다. 그간 남성들이 점령해 왔던 정치, 수사, 범죄 드라마 등에서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거나 혹은 자기들 뇌내 망상속의 민폐녀로 다뤄 왔을 때 과연 한국남성들 중 몇 명이 불편함을 호소했을까. 영화를 비롯한 창작물은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너무나 당연하게 남성중심적 시선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음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영화가 인터넷 상에서 불러온 논쟁의 크기가 무색하게, 영화 자체는 냉정히 말하자면 돈 내고 즐겨야 하는 오락영화, 상업영화로서는 그저 그런 평작 정도의 수준이다. 그러나 <걸캅스>는 여성이라는 소재에 한껏 민감해진 한국남성들이 보나마나 폭발적인 혐오와 조롱을 쏟아낼 것을 에상하지 못했을 리 없음에도, 도전적인 대사와 설정으로 한 편의 여성 서사 영화를 완성해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영화가 비록 비평과 흥행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이 모험에 충분히 신선하고 멋진 시도였다고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다만 <걸캅스>가 남긴 의문은 자명하다. 여성들이 메인 캐릭터로써 극을 이끌어가는 서사라고 해서, 반드시 ‘코미디지만 사실은 여성인권적으로 진지하고 비장한 대의도 있다’는 식으로 여성주의를 어필하는 것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 여전히 경찰, 군대 등 폐쇄적이고 남성 중심적 조직은 물론이요 평범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성이 겪는 각종 불공평한 대우와 조롱, 모욕 등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여성 캐릭터가 그런 일을 전혀 겪지 않는 듯 눈감고 지나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또한 불편해 할 남성 관객들의 눈치를 보며 여성주의를 접어두라는 말도 아니다. 오히려 나 개인적으로는 조금 덜 재미있고 덜 자극적이어도 다양한 여성들이 나오는 창작물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요는, 여태까지 우리가 ‘남성주의’적인 시선의 영화 및 창작물을 큰 불편함 없이 소비하며 남성주의가 기본값으로 자리잡았듯이, 여성주의가 성별에 관계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도록 자리잡으려면 거창하게 ‘여성’임을 강조하지 않고도, 힘 빼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 미디어물이 이 단계까지 이르기에는 본격적으로 여성들의 이야기가 주류 미디어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조심스럽다. 창작자도 소비자도, 아직까지는 조금 밍밍하더라도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강조한 여성 서사를 택할 것인가, 혹은 MSG가 들어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고를 것인가의 갈등 단계인 듯싶다. 그러나 최근 장르를 막론하고 입체적이고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많아지는 모습을 보면 논쟁과 혼란의 시대를 지나 갈수록 발전하는 한국 내 여성 담론을 보는 것 같아 흐뭇하다.
이렇듯 <걸캅스>는 여성인권에 대한 투쟁과 논의 그리고 사회적 갈등이 주요 이슈로 떠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한국 사회에서 꼭 거쳐야 할 모험이었다. 앞으로 여성임을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다양한 직업군, 입체적인 성격을 가진 여성 캐릭터들을 통해 ‘이러이러한 여자’가 아닌 ‘이러이러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도록 묘사하는 것, <걸캅스>가 남긴 숙제이자 목표라 하겠다. 투쟁과 논의 그리고 사회적 갈등이 주요 이슈로 떠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한국 사회에서 꼭 거쳐야 할 모험이었다. 앞으로 여성임을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다양한 직업군, 입체적인 성격을 가진 여성 캐릭터들을 통해 ‘이러이러한 여자’가 아닌 ‘이러이러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도록 묘사하는 것, <걸캅스>가 남긴 숙제이자 목표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