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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무임승차입니다.
도서, 영화, 전시, 음반, 공연, 방송, 맛집, 신제품 등 분야의 경계 없이 각자의 콘텐츠 경험, 배경 지식, 취향을 자유롭게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문화 자산에 무임승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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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불가능한 세상에서
미리부터 이야기하자면 직업은 공무원, 가급적이면 머리를 쥐어짜지 않아도 되는, 매뉴얼만 있다면 누구라도 상관없는, 대체 가능한 일을 하고 싶어 이 직업을 선택했다. 일단 수년간의 취업준비부터 너무 힘들었는데 그렇게 겨우겨우 취업을 하고서도 끊임없이 실적을 만들어야 하고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인생은 너무 가혹할 것 같았다. 한마디로 도태 가능한 삶을 위해 공무원이 되기로 마음먹은 셈이다.
그래서 공무원이 되고 도태 가능한 삶이 가능했느냐고 묻는다면 뻔히 답은 '노'이다.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공무원이 하는 일 중에 '그냥' 하는 일은 없다. 모든 일에는, 하다못해 너도나도 쉽게 말하는 동사무소에서 서류 떼는 일조차 그 일의 근거가 되는 법령이 존재한다. 단순히 '법령'으로 일축하지만 그 법령안에는 법률, 그 법률에 따르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존재하며, 그와 별도로 행정기관 내부의 사항을 규율하는 행정규칙(고시, 예규)과 지방자치단체가 제정하는 자치법규(조례와 규칙)도 존재한다. 큰 틀에서는 법률만 보면 되지만 내가 속한 지자체의 내부 규정도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이리저리 다 따져보는 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번거롭기만 하다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고작 말단 공무원일 뿐이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일선에서 가장 현실적인 일들을 맡는 담당자이기도 하므로 법 제 몇 조 몇 항에 딱 들어맞지 않는 업무를 처리해야 하거나 더는 현실적이지 않은 법에 맞추어 업무를 처리해야 할 때면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민원처리 기한까지 겹쳐 고민할 시간마저 충분하지 않다면, 어쩔 수 없이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전에 하던 대로', 또는 '(비록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지만)법에 쓰인 대로'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얼렁뚱땅' 일을 해버려도 되는 것인가 싶지만 괜히 일을 크게 벌이면 절대적인 시간의 부족은 차치하고서라도 나중에 수습해야 하는 것은 결국 고작 말단 공무원일 뿐인 담당자가 되므로 변화를 꾀하기 역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여기서 '무사안일주의'라고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비단 말단 공무원조차 상황이 이러한데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면? 딜레마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세간의 분노를 일으키는 사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데 그보다 훨씬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백번 양보해서 보아도 죄질에 비해 납득이 가지 않는 판결이다. 모든 솜방망이 같은 처벌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판사의 고뇌를 어렴풋이 짐작은 할 수 있다. 바로 판사 출신 작가 도진기의 책 '판결의 재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에 의하면 민사재판일 경우에는 판사들도 나름대로의 융통성을 발휘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입증해야 할 증거가 10개 있다면 6개 정도만 채워져도 유죄를 판단하고 그에 맞는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형사재판의 경우는 다르다. 입증해야 할 증거가 10개 있다면 10개가 다 채워져야만 그에 맞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른바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은 죄질이 나쁠수록, 그리하여 형벌이 무거울수록 더욱 엄격하게 요구되는데 판사도 사람인지라 한사람의 생사를 결정짓는 판결을 내리는 데에 당연히 한 치의 찜찜함도 없었으면 싶지 않겠는가. 더구나 '불분명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 원칙도 존재한다. 그래서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누가 보아도 증거와 범인이 명백한 것 같은데 무죄로 결론 나는, 국민들의 법 정서와는 어긋나는 판결이 내려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판사들이 실제 처한 딜레마가 아닐까.
선인과 악인을 명백히 구분하여 억울한 사람은 부디 구제되고 악인은 시원하게 처벌되었으면 하는 소박하고도 당연한 바람과는 달리 현대의 법은 ‘정당한 결과’보다는 ‘올바른 과정과 절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어차피 현실의 사건들은 너무나 복잡해서 시시비비를 다 가릴 수 없다. 재판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다면 재판 과정에서 절차를 꼬박꼬박 지키면 적어도 중간은 한다는 마음가짐, 이런 것들이 때로는 정의에서 한발 멀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래서 차라리 '유전무죄 무전유죄'같은 말로 공격을 한다면 끄떡없을지 모른다. 물론 어떤 거대한 정치적인 음모가 끼어있거나 비리로 점철된 사건도 있기야 하겠지만 대부분의 판사들은 성실히 본인의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최소한 '악질'이나 '비리'같은 꼬리표가 붙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은 있다. 그래서 오히려 자신의 판결에 대해 반성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이야기가 다소 옆길로 새는 것을 알면서도 여기에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대해 굳이 말하고 싶다. 영화의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이 악화되어 일을 쉬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고, 그에 따라 일을 그만 두고 질병수당을 받고자 하지만 질병수당을 받을 수 있는 최소 기준 점수는 15점, 다니엘 블레이크의 점수는 12점으로 심사기준에 미달되어 수당을 받을 수 없다. 차선책으로 실업급여라도 받으려 하지만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일을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와는 반대로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영화는 점수 따위로 환산되지 않는 인간의 존엄과 관료제의 무능을 나타내지만 한편 개인적으로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법, 제도, 절차 그리고 이를 이행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처한 딜레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질병수당의 충족 요건은 분명 필요해서 만들어졌을 테고, 그 요건에 대상자가 맞는지를 따져보는 일을 무작정 관료제의 무능함이라고 탓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현실은 너무나 복잡하고 경계가 뚜렷이 나누어지지 않는 일들 투성인데 제한된 시간과 인력으로 그 일을 (처음에는 분명 정당한 필요에 의해 생겼을)절차에 맞게 처리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고 개선해 나가려고 하는 태도와 자세는 다소 위안이 된다. [자기계발에 무관심한 법률가들이 있다. 일생의 젊은 시절에 안정적인 직업을 얻었기에 이후로는 게을러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회는 특정 시기에 도달한 개인의 성취를 빛의 속도로 추월한다. 안도감은 발전을 막고, 뒤처지는 건 순간이다.] 책 서두에 나온 가장 인상 깊고 이 책에 반사적으로 마음을 열게 된 작가의 말이다. 내게는 이 말이 직업인으로서 나와 내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다지는 데 좋은 자극이 된다.
마지막으로 판결의 재구성이라는 책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 책은 화제가 되었던 '듀스 김성재 살인사건',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과 같이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불가능‘하여, 즉,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있어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무죄로 결론 났던 여러 사건들을 비롯해 ‘삼례 나라슈퍼 사건’과 같이 법조계 내부에서 반성이 필요한 사건들까지 여러 사건들을 통해 재판을 되돌아보고 작가의 입장에서 판결을 재구성하는 내용이다. 법률적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판결이 내려지기까지의 과정을 훑으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고 덤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건실한 자극을 받을 수도 있으므로 주저 없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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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애들'의 서글픈 욕망 디테일시작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는 스타벅스 문화'가 궁금해서였다. 썸네일을 클릭하며 '사이렌오더 같은데' 중얼거렸다. 한국에서 개발되어 세계로 수출되었다는 이 서비스는 내가 애용해 마지 않는 것이었다. 직접 대면하는 갬성 때문에 진동벨도 쓰지 않는다면서 사이렌오더는 환영받다니 그런 아이러니함도 없다. 그러나 진정한 아이러니함은 거기서 시작된 나의 유투브 시청기록이다.질문에 대한 답은 이프리퀀시 문화였고, 해당 영상은 MBC에서 운영중인 14F라는 채널의 소비더머니의 콘텐츠였다. 이어서 알고리즘이 연속적으로 보여준 것은 롤렉스 브랜드 스토리였는데 문득 예전 회사 선배가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사기 위해 점심시간마다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가방도 신발도 하다못해 그냥 출근할 때 입는 흰 셔츠도 명품이었던 선배를 보면 늘 묘한 감정이 들곤 했다. 그것은 질투심이기도 부러움이기도 때로는 나와 별개의 세상을 산다는 유리감이었던 것도 같다.그러니까 아이러니함이란 것은 스스로에 대해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또래 애들과는 다르(고 싶)다'는 자의식이 늘 있었다. 그것은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스스로 중간값이나 평균 언저리라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인정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난 옷도 화장품도 관심 없어' 라는 말은 '관심 갖고 노력해봤자 만족스러울 만큼 예뻐질수 없어'라는 속마음의 이면이고, '난 명품 필요 없어' 라는 말은 '명품을 살 돈으로 더 급하게 사야 할 것들이 많아'라는 속사정의 겉치레 포장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난 돈 많이 벌거나 승진하려는 그런 야망이 있지는 않아'는 '그걸 원했는데 이룰 수 없었을 때 괴로울 것 같아서 차라리 미리 포기할래'와 같은 뜻이었던 듯 하다.그래서인지 '달까지 가자'를 읽으면서 내내 척추를 곧추세우고 경건한 마음가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소설 속 은상 언니가 '우리 같은 애들'이라고 말할 때 화자인 다해는 말한다. 마음이 쓰리면서 좋았다고, 멍든 곳을 괜히 꾹 눌러볼 때랑 비슷하다고, 아리지만 묘하게 시원하다는데, 그게 어떤 감각인지 와닿는 것만큼 소설 전반에 대한 나의 마음도 그랬다. 누군가 내게 소설에 대한 감상을 말해보라 한다면 딱 이 페이지를 펼쳐 보여줄 것이다. 다해, 은상, 지송의 삶 전반이 혹은 소설 속에서의 겪었던 단편적 부침이 혹은 소설이 비추어 보여주는 현실 세태에 대한 나의 모든 아이러니하고도 어정쩡한 입장들이 그 감각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아리지만 시원하고 못됐지만 용서받고 싶은.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제과기업의 비공채 출신 여성 사원 세 명의 가상화폐 투자 분투기이다. 아마 소설 속 배경이 되었던 2017~2018년 당시, 실제로 모 대기업의 직원이 가상화폐로 몇십억을 벌어 퇴사했다더라, 모 공기업 직원은 번 돈으로 건물을 샀다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들이 한창 퍼질 즈음, 나 역시 그 전달확산에 일조하면서도 애써 감정적 몰입을 차단하려고 했다. 믿을 수가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 초반에서도 세 명 중 막내 지송은 투자 중인 언니 둘에게 계속 불편함을 표한다. 우습고 걱정되지만, '묘하게 박탈감이 느껴져서 불쾌하다', '관심 없는 내가 바보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싫어져. 언짢고 거슬려'라고 말한다. 그것이 당시부터 지금까지 나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고요히 인정하고 나니 내가 몸담았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상화폐를 비웃던 댓글들이 떠올랐다. 차라리 주식을 하라는 말마저도 유사했다. 그때부터 초조해졌다. 나는 주인공들을 응원하면서 한편으로는 몰락을 기다렸던 것 같다. 이카루스는 태양 앞에서 추락했다지만, 주인공들은 달 앞에서 0과 1의 실체 없는 무게감에 짓눌리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너무 두려워 책의 맨 뒷장을 뒤적거리면서도 차라리 그렇게 되어버리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결론적으로 스포하자면 '달까지 가자'에서는 그런 '뻔한' '문학적 장치'로서의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복권 당첨되면 뭐 하고 싶어?'에 대한 소박한 대답 같은 에필로그가 남겨져있을 뿐이다.멍든 곳을 꾹 눌러보는 마음이 또 들었던 부분 중 하나는, 작 중 세 명이 제주도로 여행을 갔을 때 리모와st를 끌고 온 '나'와 다르게, 먼저 가상화폐 투자를 해서 수익을 보고 있던 은상 언니는 진짜 리모와 캐리어를 끌고 온다. 거기서의 리모와에 대한 묘사가 문득 서러워졌다. 부드럽고 우아하게 미끄러진다는데 내가 직접 만져보지 않아도 느껴질 것 같았다. 그래, 나는 리모와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리모와를 살 여유있는 돈이 없을 뿐이다. 리모와를 살 돈이면 리모와 스타일을 사고 나머지 돈으로 사야 할 수많은 '살 것' 리스트의 체크박스를 지워가야 하는 것이다.데뷔작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홈런을 날린 장류진 작가의 첫 장편이기에 꽤 많은 기대를 했다. 창비에서 온라인으로 발표되었을 때 센세이션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즈음 나는 미묘한 열등감에 시달렸던 것 같다. 비슷한 또래, 비슷한 흐름 (대학교 졸업 후 취업) 에서, 그런 얘기는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하는 말도 안 되는 망상을 했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사회적이고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듯한 '누운 배'나 '젠가'같은 소설을 보면서는 작가가 구상하고 만들어진 짜임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인물들이 움직인다는 느낌이었다면, 그이의 작품들은 정말 네이트 판 따위를 사진 찍어 고대로 보여주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 '달까지 가자'의 마지막 문장과 마침표를 읽은 순간 시기나 질투같은 것들도 어느 정도는 세계관을 공유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자벨 마랑의 화이트 셔츠를 입고 세탁기를 돌리는 대신 한 번 입고 매번 세탁소에 맡기던, 롤렉스의 서브 마리너가 그저 갖고 싶어 뛰어다니던 그 선배에게 느꼈던 유리감보다 한층 더 두터워진 거리감이었다. 누군가는 적당히 달달한 이야기 구조에 그의 문학적 성취를 폄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누가 백만원만 주면 좋겠다'로 시작하는 작가의 말을 곱씹는 순간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창작에서의 성취는 쉽게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구나 한발짝 앞으로 가다가도 두발짝 뒷걸음 치는 박음질 같은 인생을 살면서 급상승하는 황홀한 J커브를 꿈꾸지만, 그것을 박음질이나 J커브로 표현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그나저나...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저열한 독후감... 괜찮은건가. 나의 부끄러움이여 달까지 가자.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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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위로, 아무튼 무대, 나의 문구 여행기
-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이야기
지난 5월 말, 나의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두었다. 4년 2개월 동안 별 문제 없이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힘들게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결해 왔는데 2022년에 들어서면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여러가지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단순히 직장 에서의 스트레스 때문만으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결국 직장을 나오게 되었고. 당장 다음 일자리를 찾기 전에 몸과 마음의 회복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백수생활 중에도 꼭 지키고 싶은 두 가지는 운동과 독서였고, 그만두고 이틀 후(바로 다음날은 지방선거로 도서관 휴무일이었다) 도서관에서 여러가지 책을 빌려왔다.
특별히 한 가지 주제에 맞춰 빌린 것은 아니었고 커뮤니티나 네이버 블로그에서 추천 도서를 검색했는데 공교롭게도 세 권의 책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총평 : 반만 읽어도 느껴지는 그들의 애정과 열정] 사실 일주일 동안 세 권의 책을 다 읽지는 못했고 각 책을 반 정도 읽었다. 반만 읽은 책에 대해 글을 쓰려니 민망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가득한지 이미 느낄 수 있었다.
'공부의 위로'(곽아람) 는 대학 내내 모범생이자 우등생으로 학생의 본분인 공부에 충실했던 작가가 대학에서 수강 했던 각 과목에서 얻은 교양과 지식을 정리하고 회고하는 내용이다. 대학에서의 공부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었는지, 현재 조선일보 기자로서 또 출판팀장으로서 일하는 가운데 자양분이 되어주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내 인생에 그렇게 까지 후회되는 것은 없지만 한 가지가 있다면 대학 때 공부는 저 멀리 미뤄두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진 가영이 처럼 여기저기 발만 담근 것이다. 책 속에서 작가가 한 과목을 공부할 때의 성의와 진심을 읽으니 잊고 있던 후회와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소중한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아무튼,무대'(황정원)는 카이스트에서 과학도의 삶을 살던 작가가 빗방울이 떨어지는 각도와 단면적을 계산하기 보다 쇼핑의 빗방울 전주곡을 떠올리던 어느 순간 한예종 음악원에 진학하여 진로를 수정하게 된 이야기 이다. 현재는 여러 오페라와 공연을 제작, 연출하는 삶을 살고 있다. 처음 맡게 된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오페라 공연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고'를 겪으면서도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는 말을 되새기는 작가의 모습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문구 여행기'(문경원)은 우연히 구매하게 된 값싼 67일 짜리 해외여행 티켓에서 시작한다. 일단 사고 본 티켓으로 떠날 여행의 목적을 어렸을 때 부터 좋아했던 '문구'로 정하면서 유럽 각 도시의 문구점을 방문하고 문구를 수집하고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일기이다. 결국 작가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아날로그 키퍼 (analogue keeper) 라는 문구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고 그 브랜드의 상품을 직접 보고 싶었던 나의 서울 문구 여행도 시작되었다. 서촌, 성수, 연남동의 크고 작은 문구점을 방문하여 내 취향의 문구들을 구경하고 수집하는 작은 취미를 시작해 보게 되었다.
[반이나 남았다]
보통 60살 정도까지 일한다고 치면 그 기간이 반 정도 남았다. 어차피 직장은 비슷하게 돌아갈 것이고 몸과 마음이 소진되는 상황은 반복 될텐데 그 때마다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애정과 열정을 담을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한다면 그나마 위기 상황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는 것이다. 무임승차 친구들과 매번 이야기하는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의 균형을 맞추는 삶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상일 것이다. 2022년이 절반 정도 남은 이 순간 나에게 찾아온 고민의 기회를 그냥 날려버리지 말라고 말해주는 책들의 나머지 반을 읽어가며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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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 게임>, 야구의 승패만큼 세상사가 흑백으로 명쾌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흔히 축구에서 제일 재미있는 스코어를 3대 2의 ‘펠레스코어’라고 한다. 축구의 정식 용어는 아니지만, 전설적인 축구 영웅인 브라질의 펠레가 축구는 3대 2가 제일 재미있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한 별명이라고 한다. 펠레스코어에 비해 인지도는 다소 덜하지만 야구에도 비슷한 개념의 용어가 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제일 재미있는 야구 스코어라고 말했다는 8대 7의 ‘루스벨트 스코어’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에서는 루스벨트가 아니라 케네디 전 대통령이 한 말이라며 ‘케네디 스코어’라고 잘못 퍼져 있긴 하지만.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일본의 소설가 이케이도 준의 소설 <루스벨트 게임>은 바로 그 루스벨트 스코어에서 따온 제목이다. 한자와 나오키, 변두리 로켓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드라마화되는 현재 일본 최고의 인기 작가 이케이도 준이 모기업의 경영난으로 인해 해체 위기에 놓인 야구부를 주제로, 야구부원들의 야구부를 지키기 위한 투지와 열정, 숫자와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는 경영자, 야구를 통하여 하나로 뭉치는 직원들 등 야구를 통해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그리고 있다.
중견의 전자부품 제조업체인 ‘아오시마제작소’의 사내 야구부는 본래 실업야구계의 강팀이었으나 최근 심한 부진을 겪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글로벌 경제 위기로 인하여 회사의 경영은 난관에 봉착하고, 인건비 절감 등 비용 절감을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무려 연 3억엔 가량의 운영비가 드는 사내 야구부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인다. 임원, 주주, 아오시마제작소에게 대출해 줄지 말지 여부를 심사하는 주거래 은행 등에서는 성적도 좋지 않은 주제에 돈 먹는 하마가 되어 버린 야구부의 해체를 압박해 오고, 거기에 아오시마제작소보다 훨씬 몸집이 큰 대기업이자 업계의 라이벌인 미쓰와전기에서 인수합병을 제안하기까지 한다. 기업이란 결국 이익을 내기 위해 있는 집단인 만큼, 숫자로만 따진다면 야구부의 해체가 당연한 결론인 상황. 그러나 야구부원들을 비롯하여 야구부를 지지하는 직원들이 절실한 마음으로 한데 뭉쳐 투혼을 발휘하고, 결국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야구부를 지켜내며 아오시마제작소의 야구부의 역사는 끊기지 않게 된다. 이렇듯 아오시마제작소 야구부의 간절하고 치열한 드라마를 통해 기업 경영의 냉정한 숫자 뒤에는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있음을 감동적으로 연출한다. 또한 나아가서 스포츠가 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 소속감, 나아가서 충성심을 고양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지도 새삼 느낄 수 있다.
야구를 아주 좋아하는 나로서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일본의 실업야구 시스템, 야구선수들과 경기에 대한 묘사 등이 재미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후루룩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싸워 이긴다’는 다소 평면적인 선악의 대립과 이를 강조하기 위해 간혹 ‘오글거리는’ 묘사 등이 느껴져서 몰입에 방해가 된다는 인상이다. 사실 이건 이케이도 준의 대부분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야구부 해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악의를 가지고 일부러 야구부원들을 괴롭히려 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현실적인 해결책을 원할 뿐인데 그들이 마치 야구부에게 횡포를 부리는 악인들인 것 마냥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묘사가 반복된다. 야구부의 존립을 지지하느냐 마느냐의 여부는 개인의 인성이라거나 도덕, 선악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데 말이다.
또한 대기업이 절대적인 자본과 힘의 우위로 작은 회사를 압박하고 갑질을 한다거나 자신들의 과실을 은폐하려 든다거나 하면 몰라도, 자본주의라는 정글에서 기업 간의 경쟁은 어떤 기업이 더 착하고 어떤 기업이 더 나쁘고 하는 ‘선악’의 대결이 아니라 각자의 이익이 상충하는 지점에서 ‘강약’의 논리와 시장의 법칙을 따를 뿐이다. 당연하게도 스포츠 경기의 승패처럼 단순명쾌하게 흑백을 구분할 수 없는 부분임에도 미쓰와전기와 그곳의 야구부 사람들은 인성마저 사악한 악, 아오시마제작소 사람들은 열정적이고 성실한 선이라는 느낌을 유도하는 설정이 상당히 아쉬웠다. 특히 아오시마제작소에서 감독을 하다가 미쓰와전기에 스카우트되어 간 감독이 대놓고 아오시마제작소 야구부를 조롱하고 못되게 굴기도 하고 아오시마제작소의 에이스 오키하라를 고등학교 때 괴롭혔던 나쁜 선배들이 하필이면 미쓰와전기의 야구부 선수여서 오키하라를 비웃는 장면 등등은 작위적이고 평면적인 캐릭터 때문에 유치하게까지 느껴진다. 이렇듯 너무 과한 선악의 구도를 완화하려는 시도인지 입체적인 인물들이 일부 등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미쓰와전기로부터 인수합병에 찬성해 주면 사장 자리를 약속해 주겠다는 유혹을 받는 창업주의 오른팔 사사이 전무, 더 강력한 ‘인건비 절감’을 주문하며 야구부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야구부를 계속 유지시키기로 한 아오시마제작소 측의 결정을 존중하며 결국 대출 승인을 해 주는 은행 담당자 등이 있다. 작가 인터뷰에서 이케이도 준은 '어려운 시기에 힘이 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과하게 단순화시킨 대립 구도는 아마 약자의 입장에 감정이입하는 경우가 많은 대중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그리고 끝에 가서는 소설에서나마 약자가 승리하는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기 위한 장치인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 사회와 시장 논리에 따른 경쟁의 현실은 그보다 분명 차디찰 테니.
덧붙이자면 ‘루스벨트 게임’이라는 단어는 앞서 말했듯이 미국의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8대 7의 스코어가 제일 재미있는 야구 게임이라고 말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는데, 영어로 구글링을 아무리 해봐도 정작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8대 7의 야구 스코어에 대해서 언급했다는 단서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Roosevelt score, Roosevelt game 등을 검색하면 Roosevelt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각종 스포츠팀의 경기 결과만 검색될 뿐이다. 정작 미국에서는 쓰이지도 않는 단어가 한국과 일본에서만 널리 알려져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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