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임 승 차 #15. (2023.0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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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무임승차입니다.
도서, 영화, 전시, 음반, 공연, 방송, 맛집, 신제품 등 분야의 경계 없이 각자의 콘텐츠 경험, 배경 지식, 취향을 자유롭게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문화 자산에 무임승차합니다.
월 2회, 신나게 달려보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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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하고 싶은 숨은 명작] 조용하고 차분한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한 무임승차의 그림 추천
평소 프랑스의 정원 풍경과 모네의 작품을 좋아하셨던 분들이라면 Henri Le Sidane의 작품도 마음에 드실거라 생각합니다. 오늘 함께 볼 그림은 Henri Le Sidaner(1862~1939)의 La Table dans la verdure(녹지 속 식탁)이라는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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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20세기 초반에 제작된 작품으로 풍경과 정원을 배경으로 한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그 위에 놓인 식기와 와인병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작품에서는 흰색으로 된 식기와 은색으로 된 식기, 그리고 녹색잔디 위에 놓인 빨간색 와인병이 눈에 띕니다. 이 작품은 Henri Le Sidaner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조명과 그림자가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정원의 녹지와 그림 속 산들바람 소리가 느껴지듯이 미묘하게 그려진 작품입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자연 속에서의 식사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Henri Le Sidaner의 작품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 그리고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품에 반영됩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이 작품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며, 그의 작품은 평화로움과 조용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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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La Table villageoise, Gerberoy(제르베로아 마을 식탁)입니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 베르베로아에서 제작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그의 원숙한 화풍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부드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작품입니다. 절제된 신비감이 스며들어 예술가의 상징주의적 뿌리를 강조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그림은 녹색과 아이비가 조화를 이루며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 여기에 흰색 그릇과 테이블 위에 비치는 잔잔한 빛의 그림자는 작품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평안을 줍니다.
Henri Le Sidaner는 이외에 수많은 테이블, 자연, 정원, 빛을 소재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항상 ‘시간’이 등장합니다. 초저녁, 황혼, 점심, 아침… 시간마다 달라지는 아름다운 빛의 스펙트럼은 그의 작품을 보는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Henri Le Sidaner 작품이 더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에서 더 많은 작품들을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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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책 진짜 좋은데, 뭐라 설명을 못하겠네] 가짜 노동 - 데니스 뇌르마르크, 아네르스 포그 옌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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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의 약 1/4을 지나온 시점이긴 하지만, 이 책이 발간된 것도 작년이지만, 과감히 올해의 책으로 꼽고 싶다. 바로 덴마크의 학자이자 작가인 데니스 뇌르마르크와 아네르스 포그 옌센이 쓴 '가짜 노동'이다. 작년 하반기에 즐겨듣는 팟캐스트에서 소개해서 알게 되었는데, 도서관에서 계속 대출중이어서 이제서야 읽을 수 있었다. 솔직히 표지나 온라인 서점 소개 문구만 봐서는 내가 먼저 찾아 읽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의외로 인기가 많은지 중고서점에도 물량이 제법 풀려있었다. 과연, 읽으면서는 모든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고 싶었고 다 읽고 나서는 그 강렬한 페이지들을 사진 찍어 몇몇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용산)
저자들은 취재를 통해 현상을 설명한다. 우리 시대의 '가짜 노동'이 어떤 모습으로 일어나고 있는지, 때로는 산업군별로 또는 직종별로 한편으로는 개별 직장 혹은 개개인의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왜 일어나게 됐는지 고민한다. 그러한 논의는 점차 확장되어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노동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후반부의 '해결 방안'은 A가 문제이니 A를 하지 말자 수준이어서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다.)
인상 깊었던 포인트는 현상에 대한 설명과 '인간은 왜 일하는가', '노동이란 무엇인가'같은 질문에 다다르게 하는 생각의 체계에서 비롯된다.
먼저 첫 번째 포인트는 '공감'이었다. 책에서는 몇 가지의 가짜 노동 유형이 나열된다. 나에게 이것은 크게 개인적인 차원, 조직적인 차원, 구조적인 차원 등 세 가지로 구분된다. 개인적인 차원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태업중이라는 것이다. 정승제쌤도 말하지 않았던가. 저기 지나가는 직장인, 쟤 열심히 안 해요. 온라인 쇼핑몰의 요일별 매출 실적을 살펴보면, 월요일이 제일 높고 주말은 낮아진다. 덴마크의 우체부들은 자기 지역에 할당된 물량을 모두 배달하고 나면 업무가 종료되던 시스템에서 일정 노동시간을 꼭 채워야 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자, 예전보다 배달 속도가 저하됐다고 한다. 사실 나도, 당신도, 우리 옆에 앉아있는 그 누군가도 실제로는 업무시간 중간중간 빈둥거리고 있는 것이다.
조직적인 차원은, 일을 위한 일들을 말한다. 관리자를 관리자로 만드는 것은 부하 직원이다. 자신의 팀에 몇 명이 있냐에 따라 그 세를 과시할 수 있다.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모호한 부서를 당신 조직에서도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때로는 그 부서간에 업무가 중복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별 일 안 해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걸 입 밖에 꺼내는 순간 스스로의 일자리를 위협당하는 것은 물론, 조직의 존재 의의 자체가 흔들린다. 그 조직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비효율이 발생한다. 끊임없이 회의는 이어지지만 명확하게 결론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다보니 서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장치는 끊임없이 개발된다. 예를 들어 환자가 찾아오면 의료인들은 그 환자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보다 매뉴얼에 주어진 항목들을 체크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소요하게 된다. 사회복지사들도 시민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보다 행정적인 절차를 준수하고 완수하는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예전 회사에서도 끊임없이 '업무 효율화'를 외쳤는데, 회의는 최대한 짧게, 쓸데없는 취합 자료는 생략 같은 식으로 외치다가 금세 허공속에 묻히고 업무 효율화를 위한 과제를 찾기 위해 메타적인 업무만 늘어난 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구조적인 차원은, 노동 시장의 구성 그 자체와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3차 산업혁명 이후 화이트칼라가 노동자의 주류를 차지하게 됐다. 그들은 청소부나 지하철의 기관사처럼 개인의 업무가 실제적 가치를 낳기보다는 명확하게 수치화할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있다. 그 일들은 대체로 고소득이기 때문에, 자리를 얻기 위해 모두가 학위를 받고 과잉 교육을 받는다. 이는 국가적이고 구조적인 비효율인 셈이다. 홍보나 마케팅, 경영 컨설팅, 리더십 같은 단어들은 보기에는 그럴 듯해보이지만 그것이 정말 필요한 일인가, 왜 필요한가를 따져보면 필요에 의한 필요에 불과하다. 감사 업무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읽히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이사회를 위한 보고서를 쓰는데 몇 달을 허비하고, 이사회는 보고서 안에 엉뚱한 욕설 같은 것이 써있지는 않을지 따위나 염려하면서도 결국 그것을 읽지 않는다. 신의성실이나 직업윤리만 잘 지켜도 일어나지 않을 사고 때문에 몇 단계의 안전 장치를 걸어놓지만, 문제는 결국 어디선가 사고는 또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바쁘다'고 말하는 것은, 바쁘지 않지만 그것을 시인하는 순간 현대 사회에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없기에 스스로든 남이든 속이는 것이거나, 정말 바쁘긴 하지만 그것이 의미있고 생산적인 일은 아님에도 어쨌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왜 일하는가? 책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 때만 해도 노동은 하지 않는 것이 권위였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와 결합되면서 노동이 신성시됐다. 성경의 '달란트' 얘기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쉬는 것은 게으른 것이고, 게으른 것은 죄악이다. 그러한 의식적 세뇌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100년 전 학자들은 기술의 진보, 인구 구조의 변화, 패러다임의 혁신 등으로 노동시간이 점차 줄어들어 평균 주 15시간 노동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여전히 주 40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다. 2023년 현재 대한민국은 주 69시간 근무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의미도 없이 '돈을 벌기 위해' 시간만 흘려보낸다. 진짜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낭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과정에서 개인은 번아웃을 겪고 자존감이 무너진다. 이것이 파생되면서 사회 전반의 부조리와 상실을 양산한다. 대체 무엇이 생산력이고 효율성인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어디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책을 읽으며 내가 겪었던 경험들이 끊임없이 떠올랐고 자연히 이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나는 '이게 다 무슨 의미냐' 싶은 일들을 하면서도, '그래도 돈을 주니까 어디서든 쓸모가 있겠지' 라고 합리화했다. 책을 통해 이것이 나 혼자만 겪는 것은 아니고, 모두가 고민하고 해결해가야 할 과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당신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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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핑계 같지만, 아니 핑계가 맞지만 3월은 일 때문에 좀처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2월이야 아무리 경력직이라도 첫 달이었으니 적응하는 기간으로 친다고 해도, 경력직으로 들어온 만큼 3월부터는 새 회사에서 실무를 직접 해야 했다. 그 와중에 역시나 나답게 크고작은 실수를 연발하면서 매일매일이 긴장과 멘붕의 연속이었다. 가뜩이나 일 머리 없고 느린데 업무 상에서 아직 모르는 부분도 많다 보니 당분간은 워라밸을 외치기에는 사치다. 밤늦게 퇴근하는 일이 잦아서 애초에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없었을뿐더러 회사에서 내가 실수한 부분들 때문에 멘탈에 타격을 받아 어쩌다 칼퇴하거나 주말일지라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때가 많았다. 그리하여 취미생활이나 자기계발, 문화생활 등은 일상의 우선순위에서 쭉 밀려 있던 3월이다. 그나마 취미나 힐링타임이라곤 서울도서관 전자책 서비스를 통해 추리소설, 장르소설을 탐독한 것이 전부다. 공짜임은 물론이요, 침대에 꼼짝 않고 누워서 볼 수 있고 게다가 타인과 교류하면서 심리적으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니까. 아무튼 요지는 3월에는 뉴스레터에 쓸 만한 컨텐츠나 문화생활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3월의 마지막 날, 3월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달을 준비하는 의미에서 4월의 버킷리스트를 준비해 보았다.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2~3월 동안 영화관 제휴 할인, 카드 할인을 슬램덩크 더 퍼스트 특전을 받는 데에 올인하는 바람에 타 영화들은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았었다. 4월에는 슬램덩크 영화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는 바, 이제 숨 좀 돌리고 영화관 제휴 할인을 누려보고자 한다. 얼마 전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가 극장에 걸려 있는 동안 관람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 극장에서 못 본다면 스트리밍으로 돈 주고 사서라도 보고 싶다. 아시안, 중년, 게다가 여성 주연인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가장 화제가 될 정도로 세상은 변했고 계속해서 변해 가고 있다.
책: <친애하는 숙녀 신사 여러분> 주기적으로 알라딘을 훑어보면서 읽고 싶은 책들을 추려 보곤 한다. 유즈키 아사코의 <숙녀 신사 여러분>은 우연히 알라딘에서 보자마자 허겁지겁 이건 꼭 읽어야겠다며 다짐한 책. 우선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 구입 신청을 하고,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소장도 하려 한다. 일본의 떠오르는 젊은 여성 작가가 여성들을 향한 차별과 편견을 소재로 쓴 단편집이다. 애초에 제목부터가 ‘신사 숙녀 여러분’을 비틀었으니 말이다. 흔히 일본여자들은 남자에게 순종적이고 상냥하면서도 성적으로 개방적이라는 망상으로 한국남자들에게 소비되곤 하는데, 그런 일본에서조차 이제 여성 창작자와 여성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가보다. 아무리 여성주의와 PC를 불편해하며 비꼬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계속 있는 것. 꼬우면 남성주의 컨텐츠가 계속 공급될 수 있도록 계속 소비해주던가.
<2023 키움히어로즈 멤버십> 원래부터가 각종 사건사고로 시끌시끌한 야구계이지만, 3월은 그야말로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크보의 하루라고 할 정도로 자고 일어나면 뉴스거리가 펑펑 터졌던 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만원짜리 멤버십 회원에 가입한 내가 제일 잘못이다. 하지만 이미 멤버십 카드까지 배송 받았는데 도로 물릴 수도 없고, 어차피 야구 볼 거 좀 더 똑똑하게라도 보자. 작년에 관중 규제가 풀린 이후로 직관을 꽤 많이 다녔는데, 아무래도 싱가포르에서 8년간 직관을 못 했으니 모르는 정보가 너무 많았다. 이제 작년의 직관 경험들을 바탕으로 각 야구장의 티켓 구입이나 먹거리, 교통편 등과 관련하여 올해는 보다 알뜰하고 계획적으로 직관을 다니려고 한다.
4월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회사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할 지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다. 그러나 한 번 했던 실패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적어도 4월의 내가 3월보다는 나은 사람이길 바란다. 더불어 4월에 전할 뉴스레터에는 더 재미있고 퀄리티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적, 심리적인 여유 또한 생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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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벚꽃 그리고 궁]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서 보통 4월 초중순은 되어야 만개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올해는 벚꽃이 일찍 개화했다. 매년 매화와 벚꽃으로 유명한 창덕궁에 방문하려다가 개화시기를 놓쳐 포기했었는데 올해는 놓치지 않고 3월의 마지막 목요일에 궁을 찾았다.
입구부터 홍매화와 앵도나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평일 낮이었지만 한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관람객이 정말 많았고 다들 멈추지 않고 사진을 찍으며 즐기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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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5년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된 것을 선조부터 광해군까지 재건하였으나 인조반정 때 대부분의 궁궐전각이 소실되었다가 인조25년에 복구되었다. 경복궁과는 다르게 궁 건물들이 일직선이 아닌 응봉자락의 지형에 따라 건물이 배치되어 있어 건물간의 거리가 비교적 넓고 자유롭다. 특히 창덕궁의 정원인 후원이 아름답기로 잘 알려져 있는데 후원 관람은 이미 마감되어 보지 못한것이 매우 아쉽다.
함안문으로 연결된 창경궁은 창덕궁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넓은 호수인 춘당지 곁을 걸어가면 대온실을 만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아픈 역사가 담긴 건축물이라 그렇게 달갑지는 않아 내,외부를 한 번 슥 돌아보기만 하고 나왔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쪽으로 나오니 역시 매화, 앵도, 벚꽃 나무가 모두 개화해서 연한 분홍색부터 진한 분홍색의 팝콘같은 꽃잎들이 날리고 있었다. 이번 주말이 개화 절정이라고 하니 아직 꽃구경을 하지 못했다면 창덕궁과 창경궁을 방문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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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은 록페에서 몸을 흔들고]
육아와 록페스티벌이라니, 정말이지 서로 안 어울리는 단어의 조합이다. 심지어 야외 음악 페스티벌 같은 곳이라면 모를까 록페스티벌은 생전 가 본 적도 없다. 다만 그저 방구석 리스너로서 항상 록페에서 음악에 몸을 맡긴 나 자신을 상상하곤 했는데 육아를 하다보니 그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고나 할까. 간헐적으로 있는 외출 때마다 나를 이어폰 너머 그 상상의 나래로 이끄는 음악들을 소개해 보고 싶다. 몇번을 들어도, 아무리 들어도, 질릴 줄을 모르고 속절없이 나를 록페로 데려다 놓는 곡들을.
Dive Baby, dive ‘뭐 이런 애들이 다 있어’ 처음 글렌체크 음악을 들었을 때 느낀 충격이란. 글렌체크의 첫번째 정규 앨범 ‘Haute Couture’의 모든 트랙은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엄청 사이키델릭하고 일렉트로닉한데 환장할 만큼 좋았다. 우리나라에 이런 밴드가 있다니? 싶은 마음. 그리고 두번째 정규 앨범 ‘Youth’는 글렌체크에 대한 내 팬심을 공고히 하게 하는 명반 중에 명반이었는데 음악을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굳이 이유를 붙여 설명하려니 말문이 막혀(ㅠㅠ) 2013, 2014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음반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는 기록으로 그들의 음악성을 증명해 보겠다. 아무튼 글렌체크는 내게 있어 나의 음악적 심미안을 대변하는, 은밀한 자부심을 주는 내 최애 밴드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내가 좋아했던 밴드들은 초반에 엄청난 결과물들을 내놓다가 어느 순간 마치 본인들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듯 새로운 시도를 감행함으로써 음악적으로는 뛰어날지 몰라도 내게는 그저 난해하기만 할 뿐인 음악들을 내놓곤 했는데(라디오헤드, 악틱몽키즈, 뱀파이어위켄드 등등...) 글렌체크의 다음 앨범 ‘The Glen Check Experience’가 그랬다. 사이키델릭한 에너지를 내뿜던 ‘Haute Couture’와 통통 튀는 신스팝 느낌의 ‘Youth’와 달리 한참의 공백기를 거쳐 나온 신작 ‘The Glen Check Experience’는 몽환적인 분위기 아래 한결 장중하고 무거워 졌다. 통통 튀고 밝은 분위기인 ‘Youth’에 비해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던 ‘Haute Couture’에서조차 비교적 말랑말랑한 곡인 ‘60’s Cardin이나 ‘Vivid’를 가장 좋아했던 나로서는 솔직히 이 변화가 달갑지 않았다. 간혹 초반의 낯섦만 극복하면 그 매력에 사정없이 빠지게 되는 작품이 있으므로 참고 견뎌보려 했지만 실패, 게다가 그 후에 나온 ‘Velvet Goldmine’역시 직전 앨범과 궤를 같이 하는 멜랑콜리한 음악이었으므로(전작보다는 덜 어려운 편이지만) 역시나 빠져들기 실패, 그렇게 글렌체크는 나와 멀어져만 가는가 싶었다.
그러나 뭐랄까, 거장(!)이라면 으레 그러하듯이 초반에는 신인 특유의 신선한 에너지를 내뿜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의 근원을 찾는듯이 침잠하더니 다시금 자신만의 색을 찾고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는 것처럼, 글렌체크의 세번째 정규앨범 ‘Bleach’는 어느덧 10년차가 넘은 그들이 더이상 ‘무서운 신인’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역량 안에서 그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어엿한 중견밴드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 같았다. 전작의 그 몽환적이고 멜랑콜리함 역시 이번 앨범을 위해서는 꼭 있었어야 할 필연적인 과정이었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동안 그들이 해왔던 모든 음악적 감성이 응축되어 있는 것만 같은 이번 앨범은 성숙하고, 유려하고,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무조건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곡은 잔잔한 소용돌이가 이는 것만 같은 ‘Dive Baby, Dive’로 ‘I’m shoegazing right in front of you’라는 가사가 나올 때는(살짝 중2병스러운 가사이기는 하나 이 노래와는 썩 잘 어울리고, 내 개인적 감상이지만 원래 글렌체크 가사가 대체적으로 조금 중2병스럽다.) 정말 세상의 끝에 둘만이 남아 무너져 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이 곡의 장르가 어디에 속하든 이런 감성이야말로 슈게이징의 핵심이기도 하고. 사실 첫 멜로디를 들을 때부터 영화 파이트클럽 엔딩에 흘러나오는 Pixies의 ‘Where is my mind’가 떠올랐는데, 산산이 부서지는 건물들을 내려다 보는 두 주인공 뒤로 펼쳐지는 위태로우면서도 강렬한 음악과 아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작 3분짜리 멜로디로 세기말의 허무한 감성에 흠뻑 젖게 만들다니 명곡이 아닐 수 없다.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은 파격적인 등장, 너무 낯설어 외면을 받기도 했던 실험적인 시도, 그리고 이제야 본인들의 음악적 방향을 찾은 듯한 안정적인 컴백, 한 밴드의 서사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지금부터가 글렌체크의 진정한 시작은 아닐까 감히 짐작하면서 오늘도 Dive baby, dive를 들으며 육아에 지친 나를 다시 한번 록페스티벌로 데려가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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