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ridEr nEwslEttEr
2022.10.25.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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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무임승차입니다.
도서, 영화, 전시, 음반, 공연, 방송, 맛집, 신제품 등 분야의 경계 없이
각자의 콘텐츠 경험, 배경 지식, 취향을 자유롭게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문화 자산에 무임승차합니다.
월 2회, 마트 쉬는 다음날 발송됩니다. (가끔은 그보다 늦게)
마트 가는 즐거움 이상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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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아직은' 비주류? 하지만 삶이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거니까
우연히 망원동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치 않게 한 권의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곽민지라는 작가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의 이전 책들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이미 지난 12월에 신간이 나온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게 좀 분하기도 하고 그 와중에 당장 책을 구매할 형편이 되지 않아 도서관으로 직행하여 책을 찾으니 무려 '특화' 코너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렇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도 특별한 주제로 분류되는 이야기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바로 '비혼'이다. 책 옆으로는 다른 비혼에 관한 책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책의 제목인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는 비혼을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책을 낼 수 있고 그 책이 특화주제로 분류되는 이 시대가 지나면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비혼 이야기로 책을 내?' 와 같은 시대가 올 것이라는, 반드시 그런 시대가 왔으면 한다는 작가의 서동요적 바람을 담은 제목이다. 단순히 비혼 그 자체에 대한 설명과 주장이 담겼다거나, 현재 결혼제도에 대한 비판이 담긴 책은 아니다. 그냥 곽민지라는 사람이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술술 일기를 적는 것처럼, 곽민지라는 사람의 많은 특징들 중에 특히 요즘은 비혼이라는 점이 세상의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그 부분을 좀 더 이야기 하고자 하는 책이다.
[총평 : 내 이야기를 꺼내놓게 만들고 싶어지는 남의 이야기]
작가는 본인 개인 뿐만아니라 가족, 친구, 전남친, 그 외의 공동체, 심지어 덕질의 대상까지 요즘 본인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어느것인지에 대해서 책 한권 내내 끊임 없이 이야기 한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꼼꼼하게 적어내려간 내용들을 읽으면서 정말 깊은 대화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나와 내 주변사람들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지치고 버겁게 느껴지는데, 작가는 계속해서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유연성과 포용력을 보여준다. 애틋하게 조카를 챙기는 모습에 '그렇게 애가 좋으면 네 애를 낳지 그러냐'는 핀잔을 받으면, 그것에 대한 반격을 보여주지 않는다. 생각을 밖으로 확장하여 조카들을 포함한 모든 아이들의 세계에는 주양육자 뿐만 아니라 여러종류의 어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아이들이 어떤 존재든, 어떤 존재를 사랑하든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사회적 이모, 삼촌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삶의 롤모델과 샘플을 만들어 주는 것 또한 사회적 양육자로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야기 한다. 이 꼭지의 내용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단순히 출산과 육아 문제 뿐만이 아니라 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여러 방면의 다양성을 만나게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두고 있는 삶이 얼마나 나를 윤택하고 포용력 있게 만드는지 새롭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를 나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잘 데리고 살아가자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나의 성격, 나의 몸, 사회에서 규정하는 일방적인 규칙에 맞추려고 아득바득 노력하고 나도 모르게 그 기준대로 남을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 만큼 개성과 특징이 다양함을 받아들이고 나 스스로도 그렇게 나를 바라봐 주자는 작가의 말은 큰 위로이자 응원이 되었다. '삶에서 나를 성장시킨 경험은 비판이 아니라 받아들여짐에서 왔다. 받아들이기로 합의한 서로만이 서로가 던지는 말의 뒤편을 믿고 앞으로 갈 수 있다. 나는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일단 내 자신이 나를 받아들여주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것을 아무 거리낌없이 공유하고 서로에게 응원을 보내줄 수 있는 공동체와 함께 하는 것,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서 나도 다른사람들을 편견과 저의 없이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회적 존재로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임을 설명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감정적, 정서적인 지지를 스스로 찾아내는 경험들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때에는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취향을 깊이 탐구해 보며 최애를 찾아 사랑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책의 제목 후보였던 '남편은 없고요 최애는 있습니다' 꼭지에서는 덕후 또는 팬으로서의 정체성이 스스로에게 또하나의 큰 버팀목이 된다는 내용에 크게 공감하고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요즘 읽은 책들을 하루에 한 페이지씩 필사하고 있는데 이 꼭지의 내용은 거의 모든 부분을 필사 했을 정도로 기억에 남고 마음에 남는 이야기였다.
마지막으로는 비혼 뿐만이 아니라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성의 확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저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일차원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는 친구들과 가족의 예를 들어 다양성을 만나고 받아들이는 과정,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소란들, 그것들을 통해 한층 넓어지는 세계를 이야기 하며 구태의연한 주장대신 그저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찰떡같이 알아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더보기 : 팟캐스트 비혼세]
곽민지 작가가 사회에서 인정하는 결혼과 연애로 귀결되지 않는 다양한 사랑과 사람의 모습을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하게 된 팟캐스트 비혼세는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라는 책을 탄생시켰다. 팟캐스트를 시작한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편집자로부터 비혼을 주제로 하는 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비혼자'만' 등장하는 팟캐스트가 아니라 기혼자도, 심지어는 작가의 어머니도 등장하여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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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nde
마릴린 먼로가 아닌 노마 진 베이커를 다루려는 도전, 그리고 물음표
지난 한글날 연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Blonde>를 보았다. 마릴린 먼로와 동시대를 살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마릴린 먼로와 그녀가 갖는 상징성 등을 좋아해서 넷플릭스에 공개되면 꼭 보려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Blonde>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나이브스 아웃>으로 골든글러브 상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최근 주목받는 라이징 스타 아나 데 아르마스(Ana de Armas)가 주연 마릴린 먼로 역으로 출연하며, 브래드 피트 등이 공동제작자로 참여하여 무려 2010년부터 준비한 작품이라고 한다. 영원한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의 삶을 픽션 형식으로 다시 조명했다는데, 워낙 상징성이 큰 마릴린 먼로인지라 그간 수도 없이 미디어에서 다루어진 인물이어서 과연 얼마나 신선할지 그리고 여성과 PC함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헐리우드에서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함이 주가 되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Blonde>는 내가 기대했던 결의 영화가 아니었다. 실망스럽다, 졸작이라고 단정적으로 평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마냥 칭찬하기에는 찝찝함을 남긴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닌지, 해외 평론가들이나 다른 관객들의 평가 역시 딱 그 정도 지점에 위치한다. 10점 만점에 5점쯤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혹은 논란이 공존하는 평가를 받았다.
우선 <Blonde>의 시도는 굉장히 대담하다. 실존 인물을 다루고 있음에도 왜곡과 미화 혹은 비하 등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려 건조하게 사실만 전달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CG를 연출에 적극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전반적으로 몽환적인 분위기가 이어진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관객은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관객이 아니라 마릴린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 영화적인 재미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약간의 남미 억양을 제외한다면 마릴린 먼로로 환생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주연 아나 데 아르마스의 외모와 연기력도 발군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과감한 도전의 내용이다. <Blonde>는 CG로 강간, 낙태, 유산 등 성적인 에피소드들을 강조하는데, 이것이 여태까지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관음해 왔던 마릴린 먼로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물론 그 불행한 사건들이 마릴린 먼로라는 인물을 논하는 데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부분들이고 마릴린 먼로의 인격과 삶을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음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마릴린 먼로 신화(myth)를 노마 진 베이커라는 한 인간, 한 여성의 인생 이야기로 되돌리려는 시도를 표방하면서 정작 스크린 위에서 그녀를 굳이 한 번 또 성적으로 전시하고 해석해야 했는지 정말 잘 모르겠다.
특히 마릴린의 낙태와 그에 따른 죄책감을 암시하는 연출은 상당히 불쾌함을 돋군다. <Blonde>에서는 마릴린이 젊은 시절 낙태를 했다는 묘사와 함께 그녀 안의 가상의 태아가 “엄마, 이번에는 나를 해치지 않을 거죠?”라며 계속해서 죄책감을 자극하는 장면이 나온다. 가뜩이나 미국에서 항상 낙태는 뜨거운 감자인데, 넷플릭스라는 주류 플랫폼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대형 오리지널 영화에서 이런 내용이 나왔다는 것은 쉬이 지나치기 어렵다. 태아의 목소리를 빌려 낙태의 죄스러움을 강조하고 심지어 그 모든 죄책감을 여성에게 떠넘기는 연출은 촌스럽지만 꾸준하게 가장 잘 먹히는 프로파간다가 아니던가.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마릴린 먼로가 실제로 낙태를 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공식적으로는 세 번의 유산 경험만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검색을 좀 해 보니 미국에서는 이러한 <Blonde>의 장면이 낙태 반대론자들의 은근한 낙태 반대 아젠다 주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고 한다. 감독인 앤드류 도미니크는 “관객은 자신들의 편견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며 그런 의도를 단칼에 부인했지만, 마릴린이 낙태를 했다는 객관적인 증거도, 그녀가 낙태로 인해 괴로워했다는 증거도 없는데 굳이 그녀의 가상의 태아를 등장시켜 엄마 운운하는 연출에는 합리적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주연배우 아나 데 아르마스의 말을 빌리자면 감독은 “마릴린 먼로의 눈을 통해 마릴린뿐 아니라 노마 진으로서의 삶이 어떠했는지 전세계에게 경험시켜 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생애 내내 섹시 아이콘으로 소비되었던 마릴린 먼로가 아니라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노마 진 베이커를 알고 싶다는 기대는, 스크린 위에 그래픽화되어 보여주는 강간과 낙태 등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과 함께 물음표만 남기고 끝나고 말았다. 사후 60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섹스심벌로만 해석되는 그녀가 안쓰럽다. 20세기의 헐리우드, 나아가서 20세기 미국 문화 아니 미국 자체를 상징하는 불멸의 아이콘이자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원히 욕망당하는 마릴린 먼로. 촬영장에서 어려운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책 내용을 이해는 하냐며 조롱했다고 한다. <Blonde>가 차라리 이렇게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당시의 여성혐오적 편견과 묶어서 다시 마릴린 먼로를 해석하고 조명할 수는 없었을까. 적어도 나만이라도 그녀를 섹시한 여성은 지적이고 똑똑한 존재일 수 없으며 그래서는 안 된다는 시대의 믿음과 요구에 영리하게 자신을 셀링할 줄 알았으며 평생동안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을 꿈꾸었던 노마 진 베이커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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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그들이 내게 남긴 질문들
마침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멈췄다. tvN의 12부작 토, 일 드라마 '작은 아씨들' 이야기다. 이 드라마의 첫 화를 보자마자 반해버렸다. 돈꽃, 빈센조 등의 김희원 연출, 아가씨, 박쥐 등의 정서경 각본, 암살, 헤어질 결심 등의 류성희 미술감독 등 화려한 제작진으로 방영 전부터 기대작으로 호명되었지만 딱히 주목하진 않았는데, 트위터에 올라온 첫 화의 클립 몇 개만으로 압도되었다. 실시간으로 달리며 내내 이 드라마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폭주하는 전차 위에 올라타는 순간 문장 하나가 완성되는 틈도 주어지지 않았기에 숨죽여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이 끝나는 순간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이상할 정도로 기억나지 않았다. 꼭 완전연소같은 기분. 그럼에도 2022년 가을에 내가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그것이 나에게 어떤 흔적으로 남았는지 기록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아씨들'은 오인주(김고은 분), 오인경(남지현 분), 오인혜(박지후 분) 세 자매의 '작으면서도 크고, 낮으면서도 높은 이야기'다. 비록 가난하지만 우애는 남부러울 것 없던 세 자매는 크고 작은 사건에 휘말리며 서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한다. 첫째 인주는 회사에서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던 화영이 죽으며 남긴 20억을 들고 화영의 죽음에 대해 조사하기로 한다. 둘째 인경은 기자로서 저축은행 비리 사건을 파헤치다 서울시장 유력 후보인 박재상을 의심한다. 셋째 인혜는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지만, 넉넉치 못한 집안 형편에 재능을 펼쳐보일 때가 요원하던 차에, 박재상과 원상아의 딸이자 같은 학교의 효린과 가까워지며 기회를 갖게 된다.
내가 이 드라마에 몰입할 수밖에 없던 건 세 가지 층위에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첫째는 캐릭터 차원에서다. 우리는 왜 오인주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가? 이토록 매섭고 거친 전개 속에서 인주는 사실 별 볼 일 없다. 물리적인 힘이나 재력은 커녕, 다른 등장인물의 대사에 따르면 지식도 없다. 그러나 그는 '공기의 흐름을 뒤집고 다니는, 작은 태풍'이다. 일면식도 없던 아저씨가 죽(은 척 하)자, '자식인가' 싶게 펑펑 울어버릴 정도로 정이 많지만, 나를 팼던 상대에게 기회가 되면 몇 대 정도는 되돌려줄 수 있는 깡도 있다. 동생을 위해 여기저기 돈을 빌려 수학여행 갈 돈을 마련하고, 호랑이 굴에 순순히 들어가고자 하면서도, 동생이 유학을 간다고 하자 정색하며 '야 말을 알아듣게 해'라고 싸늘하게 쏘아붙이기도 한다. 다면적인 것 같지만 실은 평범한 우리의 모습들이다. 새시가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하고, 따뜻한 겨울 외투를 갖고 싶어하는 욕망도 공감할 수밖에 없다. 20억이 수중에 떨어졌을 때 당황하면서도 진실을 알기 위해 원상우를 찾아나설 정도로 동력이 확실하지만, 동생 인경의 '바른 말'에도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인주는 우리 모두의 빙의글 속 '김여주'이자 일종의 '메리 수'인 셈이다. 때문에 화영이 그에게 20억을 남긴 것도, 700억 통장의 명의를 그로 한 것도, 오로지 돈으로만 움직일 것 같던 최도일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그를 도운 것도 납득가는 것이다.
두번째는 텍스트 차원에서다. 과연 옳지 않은 텍스트가 존재하는가? 정치적 올바름(PC)은 어느 순간부터 조롱의 단어가 된 것 같지만, 여전히 중요한 이슈다. 만약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면 그것은 비난받아 마땅한가, 사회에서 배제되어야 할까.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포기할 수 없는 가치로, 존중받지 못한다면 그것부터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함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의 아저씨'나 '오징어 게임'같은 작품들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기리노 나쓰오가 '일몰의 저편'을 통해 던지는 화두도 맥락을 공유한다. 누구라도 공감할 아름다운 이야기란 무엇인가. 그것을 강요하는 목소리마저도 표현의 자유로 포용해야 하는가.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의 연장선에 작은 아씨들이 존재한다.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욕망의 난장이다. 등장인물들은 서로 다른 욕망을 갖고, 심지어 한 인물 안에서도 여러 갈래의 욕망이 끝없이 파생되며, 그 욕망들은 서로 교차하고 갈등을 빚는다. 그렇다면 이를 피카레스크라 명명할 수 있을까? 최종 보스라 할 만한 원상아나 그의 오른팔인 고실장님은 인상 깊게 그려졌지만, 대체로 그들을 응원하게 되지는 않는다. 세 자매가 도덕적으로 온전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요소를 제외한다면 그들의 동기와 행위는 대체로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호불호가 갈리는 포인트이자 비판의 핵심이 되는 결말이라든가, 필요 이상으로 잔인함이 묘사된다든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설명에서 오류가 있다거나, 정란회를 일루미나티처럼 묘사하며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활용하려는 듯한 안일함은 여전히 찝찝하다. 그럼에도 나는, 여성의 서사라는 측면에서, 이 시점에 처절할 정도로 날 것의 자본주의를 묘사했다는 점에서, 이 텍스트가 의의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장르와 형식의 차원에서다. 대중문화 콘텐츠의 미덕이란 무엇인가? 예술성을 겸비한 작품성일까 아니면 지루하거나 처절한 현실을 잊게 할 만큼의 자극성일까. 요가 학원 사물함 속 20억이 든 배낭과 인주를 번갈아가며 보여줄 때, 부유한 고모할머니의 저택에서 두 명이 식사할 때처럼 매혹적인 미장센은 드라마가 종영한 후에도 잊히지 않을 정도다. 과연 '그' 제작진의 역량이 돋보인다. 동시에 매 회 예상이 빗나갈 정도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전개 속도나 허무와 유쾌를 오가는 농담들, 그 와중에도 놓치지 않는 긴장과 서스펜스까지 과연 주말 소중한 시간을 책임지는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나의 길티 플레저(...) 김은숙 작가는 '남의 돈으로 예술하면 안 된다'고 말한 적 있는데, 난 이것에 백번 공감한다. 이는 보편적 직업윤리에 가깝다. 그러나, 여전히 창작자에게는 대중을 신뢰할 만한 용기가 없다. 그토록 훌륭하다는 콘텐츠들이 양적 차원에서 외면받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즉 대중문화 콘텐츠는 흥행과 수준 모두에 책임을 져야 하기에 더더욱 요구되는 것이 높다. 그리고 작은 아씨들은 이 점에서 모두가 인정하고 만족할 만한 웰메이드까진 아니더라도, 그 기준에 대해 되새겨보게 되는 계기 정도는 된 것 같다고 감히 내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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