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절반)의 베스트
어떤날이라는 밴드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라는 노래가 있다. 해가 넘어가기 전 올해의 베스트를 뽑자니 내가 과연 올 한 해를 온전히 다 누리기는 했는지, 7월 이후 내 삶은 출산과 육아로 버무려져 뭉텅이 째 날아간 듯한데 올해의 베스트라고 해도 괜찮은지, 그렇다면 ‘올해(절반)의 베스트’가 더 맞는 표현이 아닐지 싶어 옹졸한 제목을 붙여 보았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라는 노래처럼 더 마음에 와닿고 재치있어 보이는 제목을 붙이고 싶었지만.
할 줄 아는 것은 물론 관심사마저도 협소하여 이제껏 리뷰라고는 책이나 영화가 다였으니 한 해를 갈무리하는 베스트라고 별 다를 것이 있을까. 그저 책이나 틈틈이 읽고 빵이나 종종 사먹고 스마트폰이나 항시 들여다 보는 일상이었으니 별 것 없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나의 올해 베스트를 소개한다는 것은 두근거리는 일이다. 내 취향과 사생활을 공유하고 싶고 또 조심스레 인정받고도 싶은 그런 마음. 그런 마음으로 올해(절반)의 베스트를 뽑아보겠다.
1. 올해의 책: 수유하며 읽은 눈물의 책 ‘프로젝트 헤일메리’
어떤 작품을 감상할 때 오롯이 작품 그 자체를 즐기는 경우 만큼이나 그 작품과 연관된 개인의 경험, 상황, 기분이 작품에 대한 평가를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 자체로도 평이 아주 좋지만 내게는 출산의 겅험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올해 읽은 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주 강렬한 독서경험을 선물한 책이다.
다 지나고서야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출산 후 몸을 회복하고 휴식할 때 읽기 좋은 책은 결코 아니다. 일단 장황한 설명때문에 내용을 다 이해하기도 전에 지쳐버린다. 일종의 SF적 상황을 설정해 놓고, 즉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비현실적인 상황을 설정해 놓고 거기에 현실감을 주어(그러니까 화성에서 감자심기 같은)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앤디위어 특유의 스타일 같은데 그게 너무 과하다는 느낌이고 툭툭 던지는 농담같은 문체도 타율은 높지만 너무 자주 던져서 나중에는 감흥을 잃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내용인데 내용을 이해하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까지 일일이 설명하고 그 와중에 농담마저 수시로 던지니 전반적으로 그 장황함에 ‘적당히 좀 해’ 하는 감상이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출산하고 침대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때, 조리원에서 시키는 대로 정해진 시간마다 유축기를 들고 유축을 할 때, 모자동실 시간에 수유를 할 때, 짬짬이 한 장, 한 장씩 읽었던 이 책을 올해의 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너무나 강렬한 기억과 결합되어 있어서 올해의 책이라고 했을 때 다른 책은 정말로 떠오르지도 않았다. 한 손은 유축기를 들고 가슴을 쥐어짜고 있는데 다른 한 손으로는 우아하게 이북을 넘기고 있으니 이 경험을 대체 어떤 독서 경험이 대체할 수 있을까.
게다가 내용은 멸망해가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떠났다가 우주 망망대해에서 조난을 당한 주인공이 외계생명체를 만나 함께 여러가지 돌발상황과 위험을 헤쳐나가며 결국 멋진 우정을 만들어가는 내용(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이게 상당히 중요하고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만큼은 사실이다.)이니 묘하게 나의 현실과 들어 맞는 느낌이었다. 일단 낳기는 낳았는데 내 눈앞의 아기는 이제까지 내가 겪어왔던 그 모든 것과는 아예 다른 새로운 존재, 과연 이 조그만 생명체를 내가 어떻게 보살필 수 있을까, 아기가 주는 시그널을 우당탕탕 어떻게든 해석하려는 일이 주인공이 외계인 친구 ‘로키’와 서로의 문자와 행동양식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면.. 누군가는 과장이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상관 않는다. 나는 정말로 우주 망망대해를 떠도는 심정이었다.
그리하여 올해의 책은 다른 후보 없이 ‘프로젝트 헤일메리’이다. 감동적이게도 우주선의 연료로 사용되는 아스트로파지를 만들어내는 데 한계가 있던 탓에 지구로 돌아올 때 쓸 아스트로파지가 부족해 떠나면서부터 우주에서 죽을 운명이었던 주인공은 로키 덕에 정해진 운명을 극복하고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데, 이런 감동적인 팀플레이를 꾸역꾸역 나와 아기에게 대입해서 읽었던 것이 떠오른다. 나의 아기와 나는 이런 감동적인 순간들을 앞으로 과연 얼마나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이제부터가 시작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로키의 행성에서는 무엇인가를 물어 볼 때 마지막에 꼭 ‘질문?’을 붙이고 강조할 때는 같은 단어를 세번 말하는 것이 법칙이다.
그래서 이 책 추천함, 질문?
추천함! 추천함! 추천함!
2. 올해의 빵: 베이커리계의 올라운드 플레이어 ‘공덕 파네트’
우리동네 빵집 ‘파네트’를 소개할 때 우스갯소리로 베이커리계의 ‘올라운드 플레이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경사진 언덕의 초입, 주변에 카페나 빵집이라고는 전무한, 마을버스나 지나다니는 무드없는 길가 마포구 마포대로11길 17에 2016년 오픈한 파네트는 7년여가 지난 지금은 공덕동을 대표하는 빵집이 되어 빵덕후들이 굳이 빵지순례까지 하러 올 정도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브레드05의 앙버터, 쟝블랑제리의 단팥빵이나 맘모스빵, 어글리베이커리의 대파빵, 피오니의 딸기케이크와 같이 보통 유명한 빵집이라고 하면 어떤 장인정신 같은 게 느껴지는 시그니처 메뉴가 있는 경우가 많지만 파네트는 여기에서만 먹어야 하는 시그니처 메뉴 같은 것은 없다. 오히려 유행에 편승해 그때 그때 메뉴를 내는 곳에 가까운 편이다. 예를들면 한국에 에그슬럿이 들어오니 슬그머니 페어팩스 샌드위치 메뉴를 내놓는 식으로.
하지만 원조가 아니라고 해서 맛까지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일단 요즘같이 파인다이닝에까지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곳곳에서 그 비슷한 맛과 풍미를 구사하여 미식이 대중화 된 한국에서는 원조가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게 맛을 내는 맛집은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파네트의 놀라운 점은 모든 메뉴가 다 그렇게 원조에 버금갈 정도로 맛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빵이라면 남부럽지 않게 먹고 다녔으므로 위에 언급한 빵집은 물론이요 소위 말하는 ‘앙버터로 유명한 곳’, ‘소금빵으로 유명한 곳’ 등등 유행하는 빵에 따라 모두 여기저기 다녀봤는데 파네트의 빵은 그 빵집보다 더 맛있거나 최소한 비슷한 정도로는 맛있었다. 특히 올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르곤졸라 휘낭시에’
최근 베이커리계의 유행은 단연 ‘구움과자’류이고 파네트 또한 여기에 편승해 까눌레와 마들렌, 휘낭시에를 만들고 있으며 역시 다 수준급의 맛을 낸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고르곤졸라 휘낭시에’는 단연 비교우위의 맛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왜냐하면 파네트에서 처음 이걸 먹고 너무 맛있어서 비록 고르곤졸라 휘낭시에로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근데 휘낭시에로 유명한 곳도 아니고 고르곤졸라 휘낭시에로 유명한 곳이 있기는 한가?)다른 두 곳에서 연달아 사먹었는데 파네트의 것이 압도적으로 맛있었기 때문이다. 흔한 메뉴는 아니다 보니 혹시 이게 파네트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은 아닐까 찾아보았으나 무언가가 유행하고 나면 대개 그렇듯이 진짜 원조가 어느 곳인지는 알기 어렵고.. 다만 여기저기서 파는 것을 보니 파네트가 개발한 것은 아니었을 것임을 짐작해볼 뿐이다.
어찌되었든 언제나 실망시키는 일이 없던 빵집이지만 구움과자까지 이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다. 최근에는 처음으로 밤파이도 도전했는데, 밤파이로 유명한 리치몬드의 그것보다 맛있었다. 그래서 올해의 빵집은 베이커리계의 올라운드 플레이어 파네트를 꼽겠다. 참고로 올해의 빵집 후보로는 방화동 타르데마(택배가능하므로 참고)의 고양이 식빵과 소금빵, 롯데호텔 델리카 한스의 딸기케이크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모든 빵이 다 맛있다는 점 때문에 파네트로 결정!
3. 올해의 팟캐스트:
수유하며 들은 눈물의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의 ‘격동 500년’
당연한 말이지만 수유를 하면서는 양손이 자유롭지 못하다. 한 손으로는 아기를 받치고 한 손으로는 젖병을 물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수유시간은 대략 10~15분 남짓이지만 수유 후 트림은 필수라고들 하니 트림시키고 소화까지 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치면 30분, 그런데 트림을 잘 하지 않고 속역류 증상도 있는 아기의 경우(그리고 나의 아기가 여기에 속한다) 보험삼아 더 세워 안고 있는 게 좋으니 대략 수유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을 계산하면 40~45분이 걸린다.
양손을 사용하지 못하고 아기를 든 채로 못해도 짧으면 30분 길면 50분이 걸리는 수유시간을 그나마 재미있게 보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팟캐스트 듣기, 처음에는 티브이를 켜서 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아기에게 티브이를 보여주면 좋지 않겠다는 생각에 팟캐스트를 듣게 되었다. 비밀보장이나 씨네마운틴을 들을 때도 있고 흘러가듯이 듣더라도 영어공부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all ears english나 stuff you should know를 들은 적도 있지만 꾸준히 매번 듣는 것은 바로 ‘과학하고 앉아있네’라는 프로그램에서 과학자의 삶과 업적을 다루는 ‘격동 500년’.
과학자의 삶과 업적이라고 하면 위인전이나 전기를 읽는 듯한 지루할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격동 500년의 곽재식 작가를 통해 듣는 과학자와 과학 이야기는 진짜로, ‘과학치고’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재미있다. 다루는 인물의 이름의 기원에서부터 고향은 어떤 곳인지 동시대 인물은 누가 있는지 그러다가 갑자기 영화 이야기로 튀기도 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어 온갖 잡다한 썰들을 풀어 놓는데 이렇게 위대한 과학자의 어려운 업적을 동네 사랑방에서 얻어 듣듯 재미있게 들을 수 있나, 감탄하게 되는 것이 격동 500년의 특징이다.
그리고 진행자인 최팀장과 이용기자와의 케미스트리도 좋아서 셋이서 수다떨듯이 이야기 하는 것을 듣다 보면 덩달아 교양인이 된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무엇보다 여성과학자와 남성과학자를 번갈아 1:1로 다루면서 과학이 으레 남성의 영역인 것처럼 치부되지 않도록 과학자를 선정하고 짚을 것은 짚고 넘어가는 점 또한 좋다. 이를테면 ‘리처드 파인만’ 편에서 리처드 파인만의 젊은 시절, 당시에는 문제 없이 받아 들여졌을테지만 지금 들으면 불쾌감이 일 수 있는 그의 농담을 언급하면서, 이런 농담에 대해 현재라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과학계가 은연중에 여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패배감이 들 수 있으므로 이야기 도중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이렇게 세심하게 방송을 만드는 곳이라면 앞으로도 믿고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점을 꼽자면 트렌드에 맞지 않게 긴 러닝타임. 한 회에 2시간은 기본이요 아인슈타인 편은 장장 7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데, 나로서는 매일매일 하루에 수유하는 횟수와 시간에 맞추어 쭈욱 듣고 싶으니 러닝타임이 지나치게 길다는 것은 사실 장점이다. 오히려 좋아!
4. 올해의 하루: 내배내산(産) 후기 ‘출산’
그날은 아주 심심하게 왔다. 새벽에 갑자기 양수가 터진다든지, 밤새 진통으로 배가 점점 욱신거리다가 견딜 수 없이 아파진다든지 해서 진료시간이 아닐 때 급히 병원으로 달려가야만 하는 상황을 가정해서 분만실 전화번호도 따로 기록해 놓았는데 결론적으로는 전부 의미없는 준비였다. 나는 인생의 한번인 출산마저도 그다지 드라마틱하게 맞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심심한 출산도 나쁘진 않은데 그냥 인생 전반이 다 늘 심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아무튼 예정일이 지나도 아기가 충분히 내려오지 않아 의사는 난색을 표했다. “아기 몸무게가 3.5정도 되거든요, 시간이 지나 아기 몸무게가 늘면 더 힘들어지니까 일단 빨리 유도분만 날짜를 잡죠”라고 하며 뜸을 들이는데 뉘앙스가 유도분만도 쉽지 않을 것 같은 뉘앙스인지라, “저기 그럼 그냥 수술할까요?”라고 여쭸더니 “아, 그러실래요? 이틀 뒤 목요일 11시, 12시 비는데 언제로 잡아드릴까요?” 이렇게 일사천리로 수술날짜와 시간을 잡았다.
앞서 말한 새벽에 양수가 터진다든지 밤새 진통이 온다든지 하는 상상으로 막연히 밤중에 출산을 할 거라는 생각이 늘 있었는데, 그런 생각과는 반대로 오전 11시 제왕절개 수술을 잡고 아침 9시 반쯤 남편과 병원엘 갔다. 아무리 출산이라 하더라도 접수는 해야하므로 가자마자 접수를 하고 대기 의자에서 기다리는데, 이게 아기를 낳을 때까지 두 시간도 안남은 상황이 맞나 도무지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접수를 하고 코로나 검사까지 마친 뒤 비로소 분만실로 갔는데 분만실 역시 심심한 풍경, 산모의 비명소리라든가 초조하게 마음을 졸이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은 없고 그냥 칸막이가 쳐져 있는 여러 침대 중 한 곳에 앉아 수술에 대한 안내를 받고 입원실로 옮겨 가 이런저런 주사를 맞을 뿐이었다. 후기를 찾아봤을 땐 수술 전 맞는 주사가 그렇게 아프다던데 다행히 그리 아프지도 않아서 수술하고 나서도 견딜만 하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희망을 품기도 했다.
11시, 이제 정말 수술실로 들어갈 시간, 곧 한 생명을 만나기 직전이지만 그 전까지의 과정이 너무나 빠르고 순조로운 동시에 건조하기도 해서 얼떨떨한 상태로 남편과 헤어져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창백할 만큼 환한 수술 조명, 한여름이었지만 춥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쩌면 그제야 떨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의사는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할 건데 아기를 꺼내면 잠깐 깨워서 아기를 보기 원하는지 아니면 수술 내내 쭈욱 마취하기를 원하는지를 물어보았다. 사실 마취 후 깨면 아플 것이 무서워서 어차피 나중에 실컷 볼 거 후자를 원했지만 아기에 대한 사랑이 너무 없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을지 못내 신경이 쓰여 깨워달라고 얘기하고 소위 말하는 새우등 자세로 구부려 마취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주사를 한번 더 맞았던가.. 그래봐야 6개월도 지나지 않은 일인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술에 걸린 시간은 총 30분 남짓, 도중에 잠깐 깨서 아기 울음소리를 듣긴 했지만 마취중이었으므로 몽롱하게 아기를 보고난 후 한동안은 다시 기억이 없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입원실로 와 아까 품었던 내 낙관적인 희망과는 반대로 배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겪으며 그 와중에 또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던 것이 기억난다.
‘자연분만은 일시불, 제왕절개는 할부’라는 해묵은 비유처럼 수술의 고통은 한참 갔다.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를 수시로 눌러댔는데도 첫날은 죽을 만큼 아팠고 그 다음날은 엄청나게 아팠고 그 다음날은 그냥 계속 너무 아팠다.(그리고 지금도 간간이 아프다.) 방귀를 뀌어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데 방귀를 뀌려고 배에 힘을 주는 것조차 너무 아파서 무서웠다. 그래서 수술 다음날에 아기를 보러 처음 신생아실에 내려갔을 때는 실제적으로 느껴지는 고통이 너무 큰 탓에 뭉클하거나 감동적인 기분이 덜했던 것이 사실이다. 조금이나마 내 힘으로 걸을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아기를 보고 눈물이 났는데, 유리창 너머에 있는 아기가 눈을 감고 있다가 슬며시 떴을 때 저 자그마한 한 생명이 스스로 숨을 쉬고 눈을 뜨고 감는다는 게 문득 경이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이롭고 감동적인 시간을 보낸 것은 아주 찰나였고 입원기간의 대부분은 어리둥절한 상태로 적응하느라 바쁘게 보냈다. 아직 고통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모유수유 시간, 유축모유 전달 등으로 수시로 신생아실에 내려가야 했는데, 모유수유 시간에 아기를 만날 때면 아기가 울지는 않을까 매번 초조해하며 제발 아무일 없이 함께하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가기만을 기다리곤 했었다. 아기와 오래있기 보다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다니 우습지만 이런 감정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입원 기간과 조리원 생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아기와 본격적으로 지지고 볶기 전이지만 그 시기의 불안함과 고충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까지 쓰면 너무 글이 길어지므로 일단 내배내산, 출산후기까지만 적으려고 한다. 심심한 출산은 있을지언정 심심한 육아는 절대 없으리라 장담하는 지금은 태어난지 아기가 태어난 지 158일째, 만날 ‘언제 크니’ 하고 염불을 외었지만 이 글을 쓰면서 신생아 때 사진을 보니 많이 컸다 싶다. 어쨌든 2022년 올해의 하루는 출산의 그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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